앞서 다둥이 엄마가 된 여성들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함을 담아 조언했고, 친정 엄마는 “혼자서도 무탈하게 잘 큰다”며 딸의 인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는 재촉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반대로 ‘1자녀 예찬’을 들으며 지내고 있다.
나는 ‘결혼하지 말걸’ 하고 후회한 적은 있어도 ‘아이를 낳지 말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철저히 부부가 원해서 만난 아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 아이가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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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낳지 말걸’이라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건 불만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건 ‘불안’이었다. 출산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엄청난 보물을 얻지만 동시에 자유를 빼앗긴다. 지금 나는 극장에서 영화보기, 집에서 책 읽기, 자고 싶을 때 잠들기 등을 깊이 소망하면서 살고 있다. 출산 전에는 퇴근 후 마음껏 빈둥거렸는데 지난 20개월 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이런 건 불편이지 불안이 아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삶의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경우는 어떠할까. 전업주부에 대한 시선 중 하나가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지내지 않냐”는 말인데 내 주변을 보면 전업주부의 삶도 평안해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불안해하는 엄마들로부터 ‘아이 낳은 걸 후회한다. 왜 애를 많이 낳아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을까’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을수록 더욱 그랬다. 정부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재교육과 일자리 연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대부분 20, 30대에 결정된다. 육아에 전념하는 시기랑 겹친다.
출산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면 나 역시 후회를 모르고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를 왜 낳아가지고’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마음을 퍽퍽 때려서 보이지 않게 구겨버리겠지만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출산을 후회하는 마음은 쉽게 내보일 수 없는 금기와 같다. 자신의 선택으로 돌봄이 필요한 생명을 낳았다는 점에서 지지받지 못한다. ‘저런 마음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심만 살 뿐이다.
부모와 아이, 행복한 만남이 아닐 수도 있다. 인디펜던트 캡처 |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에서 실시한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하시나요?’ 여론조사에서는 4496명 중 9%(404명)가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모가 되어서 좋다’는 답변이 27%로 3배 높았지만 10명 중 1명이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때로 후회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낸다’는 사람은 20%였다.
‘아이 낳은 걸 후회하시나요?’라는 주제로 실시된 영국 인디펜던트 여론조사. 4496명의 9%가 ‘부모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했다. 인디펜던트 캡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개인의 못난 부분으로 인한 하소연, 푸념, 징징거림이 아니라 노후 불안, 경력단절에 따른 욕구불만, 경제적 어려움이 출산을 후회하는 마음을 구성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문제와 맞물리는 부분이다. 사회안전망 확충 등 개선 없이 개인의 노력과 정신 승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러가지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우리 사회에도 토로하고 공감하고 조언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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