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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에 서면 자주 소름 끼쳐… 어느 순간 에너지 확 느껴”

입력 : 2016-05-15 20:33:55 수정 : 2016-05-15 20: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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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 미 나우’ 출연 클릭비 출신 배우 오종혁 “이인이시네요.(미인이시네요)” “빠 친구 어써요.(아빠 친구 없어요.)” “엉중하게 모셔. 엉중하게.(정중하게)”

휠체어에 앉은 10대 소년 조이가 연거푸 말한다. 알아듣지 못한 상대방은 매번 “그∼으래”하며 난처해한다. 연극 ‘킬미나우’의 조이는 선천성 장애를 가졌다. 두 손을 뺀 몸 전체가 말을 안 듣는다. 고개는 외로 꺾여 흔들흔들댄다.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당연히 발음이 뭉개진다. 먹고 씻고 화장실에서 닦는 것조차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 조이로 분한 배우는 아이돌 그룹 클릭비 출신의 오종혁(33). 소녀팬을 설레게 한 꽃 같은 미모는 연기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객석에 웃음이 번지는가 싶더니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불이 켜지자 열광적인 박수가 쏟아진다. 최근 연극이 상연되는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그를 만났다. 2시간 넘게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니 후유증이 클 것 같았다.

“연극을 하는 순간에는 잘 모르는데, 공연이 끝나면 여기저기 아파요. 목이 가장 아프고, 턱 손목 손가락도 그렇죠. 발끝을 꺾고 있어서 발끝도 아프고, 정강이도 뻐근해요. 부모님을 위해 안마의자를 샀는데, 요즘 집에 가면 제가 많이 쓰네요.”

연극 ‘킬 미 나우’의 오종혁은 “부모님이 제가 어떻게 사는지 매일 보시면서도 주기적으로 ‘왜 TV 안 나오냐. 아들도 저기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신다”며 “그럴 때면 ‘예. 어머니 나갈 때 되면 나가겠죠. 거기 나간다고 좋은 삶은 아니잖아요. 전 충분히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재문 기자
그는 몸의 불편함보다 정신적 부담이 크다고 했다. 연극열전이 무대에 올린 ‘킬미나우’는 캐나다 유명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최신작이다. 홀로 장애 아들을 키워온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며 겪는 가족사를 그렸다. 장애와 성, 죽음, 삶, 가족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오종혁은 “성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조이가 아버지와 부딪치다가 어느 날 아버지마저 장애를 갖게 된다”며 “자신은 무력한데 상황은 점점 악화되니 뒤로 갈수록 쌓이는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감정을 이겨내고 조이를 단단하고 밝은 인물로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발음도 난관이었다. 관객에게 내용을 전해야 하는데, 장애를 정확히 표현하니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원칙을 세웠다. 키읔, 쌍기역, 히읗은 발음하지 못하고 미음은 부정확하게 말하는 식이었다. 여러모로 힘든 작품이지만 오종혁은 대본을 받자마자 ‘킬 미 나우’에 빠져들었다.

“대본을 울면서 봤어요. 바로 꼭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생각은 아예 안 했어요. 소재 자체가 민감하고, 자위나 목욕 장면도 있다 보니 오히려 연극 제작사 측에 내 소속사를 설득해달라 했죠.”

그의 행보에서 인상적인 점도 이 부분이다. 그는 이번까지 세 번째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브라운관 스타, 아이돌 출신 배우는 연극에 관심이 없으리라는 선입견과 정반대다. 실제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연예인들이 뮤지컬 출연은 선호해도 연기의 기초인 연극을 하라고 권하면 외면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왜 대중의 관심도, 경제적 보상도 매우 적은 연극을 택했을까.

“연극이 좋아서죠. 드라마 등을 했을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무대에 서고 많은 훌륭한 배우들을 보면서 제가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장사로 치면 손해인 연극을 하기 위해 그는 여전히 소속사와 줄다리기 중이다. 연기에 대한 자세가 진지해 보였다. 그는 “제 딴에는 진지한데 어떻게 비쳐질지는 모르겠다”며 “어떻게 비쳐질지도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년 전 군대에서 동계 훈련을 못 받아서 전역일을 한두 달 늦췄어요. 마케팅용이라는 말을 들었죠. 실력이 있어 보이고 싶어서 연극을 하는 거란 얘기들도 많이 해요.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아이돌 활동할 때 신비주의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라 요구받은 게 너무 많았어요. 소속사에서 나와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됐을 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꺼번에 풀어져 버렸던 것 같아요. 하하.”

실제 그는 ‘저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가감 없이 말을 이었다. 그는 현재 연기, 노래, 예능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스스로는 “배우라고 할만큼 연기를 잘하지도, 가수라고 할만큼 노래가 훌륭하지도 않다”며 “음악을 좋아하지만 노래 외적으로 챙겨야 할 일들이 감당이 안 돼서 지금은 무대에 있는 게 가장 편하고 좋다”고 했다.

“연극 무대에 있으면서 소름이 끼칠 때가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 공기가 흘러요. 우리가 무대에서 연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한순간 안으로 딱 들어가면서 에너지를 확 느끼는 거예요. 그 기억들을 잊지 못해요. 연극은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다들 진심으로 대해요. 이들이 만드는 에너지는 그 무엇과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준비 과정에서 지쳐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많이 좌절해요. 그걸 하나씩 해결하며 조금씩 결과물이 풍부해질 때마다 몸은 지치는데 마음속 에너지는 꽉 차요. 이 과정만큼은 최고예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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