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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의세금이야기] 쉽게 풀 사건도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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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8 21:25:33 수정 : 2014-07-08 21: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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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불복사건을 하다 보면 눈 밝은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는 초나라를 정벌할 때 전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닌 게 아니라 길목을 지켜 초나라 군사들을 그쪽으로 몰아넣는 전법으로 전공을 세웠다. 조세불복도 마찬가지이다. 불복을 대리하는 전문가는 길목을 알아야 한다. 그 길목으로 사건을 유인해야 한다. 여기서 길목이라 함은 법리를 말한다.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어느 하나가 걸리라는 듯이 쟁점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핵심이 되는 법리를 부각시켜야 한다. 주장을 다 했는데 안 들어준다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심리담당자는 담당하고 있는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항상 받고 있다. 이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서면을 써주길 바란다. 너저분하게 써봐야 심리담당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은 힘들게 일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편하게 일하게 해줘야 승소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 납세자는 승소하고 나면 당연히 이길 것이 이겼다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인정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면 요순시대가 벌써 몇 백 번 오고도 남았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전문가가 핵심을 간파하지 못해 쉽게 풀릴 수 있는 사건이 오래 지속된 예가 있다. 부동산임대회사의 대표이사인 갑이 있다. 그 회사는 그의 아버지가 설립했는데 사원 구성은 아버지와 갑,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돼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 그 이후로 갑이 회사를 운영했다. 갑은 회사를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을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자금을 지원해 그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여인과 재혼했다. 그 여인은 전 남편과의 사이에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을이었다. 갑은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을이 성인이 되자 증자와 감자를 반복하면서 행방불명인 갑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의 지분 전부를 그가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먹어 힘이 떨어지자 대표이사 자리를 을에게 물려줬다. 1년 후 갑은 사망했는데 갑의 친자식이 회사의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는 과정에서 갑의 형제지분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을에게 전부 이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내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을과 그의 어머니는 사문서 위조와 공정증서부실기재죄 등으로 기소됐다. 국세청도 가세해 을이 지분을 불린 것은 불균등 증감자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증여이익을 계산해 을에게 증여세 수십억 원을 과세했다. 갑은 억울하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결국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거기서 일부 금액이 감액됐다. 그러나 을은 일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특수관계자가 아니라는 주장만 부각시켰으면 끝나는 사건이었다. 민법에는 친족의 개념에서 ‘혈족의 배우자의 혈족’이라는 문구를 1990년 개정하면서 삭제됐다. 따라서 계부(繼父)인 갑의 아버지와 갑의 형제들은 을과는 아무런 인척관계도 없어 세법상의 특수관계자가 안 된다. 사건이 너무 쉽게 끝날 수 있었음에도 다른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주장함으로써 시간과 돈을 낭비한 후에야 비로소 그 법리가 소송에서 밝혀졌다. 이러니 전문가가 중요한 것이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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