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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가계, 이대론 안된다] 가계 파산 주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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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2 06:00:00 수정 : 2014-01-10 17: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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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가게, 이대론 안된다… 부동산 한파에 ‘파산의 악몽’으로 “담보로 잡힌 상당수 아파트 등 주택은 사실 채권자인 은행이 소유자라고 봐야 합니다. 개인은 매월 이자(월세)를 내며 은행 대신 주택을 관리해주는 셈이죠.”

한 개인회생 전문 법조인이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 한파로 상당수 서민과 중산층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주택 마련에 나섰다가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면서 취재팀에 해준 말이다. 취재팀이 조사한 개인회생 신청자 479명 가운데 주택 등 담보부 회생채무를 떠안고 있는 이들은 전체의 36%인 174명에 달했다. 담보채무액은 전체 채무액의 21%인 257억원, 1인당 담보부 채무액은 1억4741만원에 달했다. 이들 중 일부는 집값이 한창 올랐던 2005∼2007년 중 주택 구입에 나섰다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내 집 마련이 부동산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파산의 덫으로 돌변한 셈이다.

다만 취재팀이 자술서에 제시된 개인회생 신청 이유를 분석한 결과 생활비 부족이 71%(이하 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실패 45.4% ▲사기피해 13.5% ▲병원비 과다 12.3% ▲연대보증 10.2% ▲주식투자 실패 5.8% ▲교육비 과다 4.4%의 순이었다. 현재 법원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택을 매입할 경우 부채뿐 아니라 자산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채무 증가 사유 항목에서 제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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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파산… 가족해체·자살로 내몰려

이른바 서울 강남3구 지역에서 7년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한 조모(54)씨의 인생은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실직하고 변변한 생활 능력을 보이지 못하자 10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화근이었다. 조씨는 2007년 송파구에서 분양가 3억9000만원짜리 아파트에 당첨된 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폐업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3억4000만원이었다. 신용대출까지 합쳐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였다. 한 달 이자만 200만원에 달했다.

조씨는 “유망한 지역이라 당첨만 받으면 최소한 5000만원 정도의 시세차익은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아파트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반년 만에 분양가보다 3000만원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처분한 조씨는 마침 붐이 인 빌라 분양으로 다시 승부수를 띄운다. 조씨는 2009년 강북구에 빌라 4채를 신축했다. 건축비는 외가 친척과 동생에게서 각각 빌린 2억5000만원, 1억5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빌라는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2010년 건당 3000만∼5000만원씩 가격이 떨어졌다. 2013년 현재 이들 빌라 중 3채가 경매에 들어갔다.

조씨는 지난해 4월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됐다. 남편은 “너 때문에 빚더미에 앉았다”며 구타와 폭언을 일삼았다. 이혼도 요구해 응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최씨도 2003년 동작구에서 3억5000만원에 4층 빌라를 사들여 재건축하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건축 비용 3억4000만원은 건물을 담보로 은행 등에서 빌려 충당했다. 그러나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최씨의 빌라는 월세 임대가 잘 되지 않아 4채를 모두 전세로 임대한 뒤 대출금 일부를 갚았다. 그래도 막대한 이자 비용이 부담돼 1년 만에 최씨는 빌라를 통째로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매각가격은 6억원. 이 자금과 여윳돈을 합쳐 1∼4층 전세 보증금 5억원과 은행 대출 잔금 1억2000만원과 개인빚 5000만원 정도를 갚았지만 여전히 카드 대출 등 빚이 남은 상태다.

강북 뉴타운 지역에 무리해 투자했다가 막장에 이른 사례도 있었다. 성북구 뉴타운 지역에 살던 심모(46)씨는 2009년 은행 대출과 지인 돈을 모아 집 근처에 빌라를 한 채 구입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나 친구들은 “재개발만 되면 그냥 앉아서 돈을 번다”고 심씨를 부추겼다. 그런데 2011년 유럽 재정위기와 뉴타운 지정 해제조치로 집값은 폭락했다. 심씨의 집 두 채는 현재 가치가 각각 1억7000만원, 1억2500만원인데 담보대출이 1억3500만원, 1억5000만원씩 있다. 심씨는 현재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한때 유력한 투기수단이었던 재개발시장도 부동산경기한파로 찬바람이 불고있다. 사진은 서울시와 강남구 간 갈등으로 재개발이 장기 표류 중인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 판자촌인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교육열도 가계 파산에 한몫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도 가계 파산 주범 중 하나다. 2007년 이혼한 송모(여)씨는 아들과 미국 이민을 준비했지만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우선 아들만 미국으로 보냈다.

아들 학비와 현지 체류비로 월 200만원씩 송금해야 하지만 목돈이 없던 송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금방 아파트값이 회복돼 매매가 성사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송씨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고, 지난해까지 변변한 직장조차 없는 상태에서 대출만 계속해서 늘어갔다. 송씨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곁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김모(56)씨는 딸과 아들 호주 유학비로 5년간 2억1000만원을 썼다. 남들보다 부유한 집도 아니었지만 딸이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택한 유학길이었다. 부족한 유학비용은 대부업체 대출 등으로 메웠다. 지금은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버는 돈으로는 대출 이자도 내기 어렵다. 교사 A(56)씨는 월급보다 아들의 해외유학비가 더 많아 개인회생에 몰렸다. B(51)씨도 외동딸을 미국에 유학보내면서 대출을 시작해 지금껏 그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황모씨도 자식들 교육비 탓에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그는 세 자녀 교육비 때문에 30대 후반에 월급을 꼬박 모아 마련한 45평 아파트를 32평으로 줄였다가 2012년부터는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월세 집에 거주 중이다. 집안은 우울한 분위기로 변했고, 아내는 지난해 비상금으로 저축해 놓은 돈까지 챙겨 가출해버렸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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