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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기고 갈라진 우리 한데 묶어놓고… '큰어른' 김수환 추기경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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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20 19:01:00 수정 : 2015-09-06 18: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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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시민 1만여명 참석 교황葬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추모
묘비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새겨
명동성당 떠나 20일 장례미사를 마친 김수환 추기경 운구행렬이 정들었던 서울 명동성당을 떠나고 있다.
송원영 기자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그는 떠나갔다. 살아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라며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했고, 죽어 “사랑하고 또 용서하라”며 찢기고 갈라진 우리를 하나로 묶은 그다.

그는 떠나갔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 중에서) 일깨워 준 그의 메시지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20일 서울 명동성당 본관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를 거쳐 경기도 용인 가톨릭공원묘지 내 성직자묘역에 안장됐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주한 외교사절, 사제와 신자 등 명동성당 안팎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전 10시 대성전에서 열린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사 자격으로 정진석 추기경이 집전했다. 정 추기경은 “김 추기경이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됐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고 애도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 추기경이 대신 읽은 고별사를 통해 “오랫동안 서울의 가톨릭 공동체와 추기경단 일원으로서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해 오신 그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총리가 대독한 고별사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큰어른인 김 추기경의 마지막길을 배웅하려 한다”고 추도했다.

김 추기경은 미사 이후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호등이 적은 길을 택해 장지로 운구됐고,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운구차가 지날 때마다 성호를 긋거나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운구차는 오후 1시30분쯤 경기도 용인의 가톨릭공원묘지에 도착했으며, 30여분간 하관예식을 가진 뒤 추기경은 1984년 선종한 노기남 대주교의 묘소 옆에 안장됐다. 김 추기경은 흰색 제의에 평소 쓰던 나무 묵주 하나만 손에 쥔 채 4㎡ 남짓 작은 공간에서 안식했다.

앞으로 세워질 묘비에는 사목 표어(‘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와 함께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의 시편 23편 1절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가 새겨질 예정이다.

지난 16일부터 전날까지 38만7420명이 명동성당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그의 사랑실천을 본받은 시민들의 장기기증 서약이 급증하는 등 그는 죽어서도 세상에 사랑을 남겼다. 김 추기경과 친분 있는 작가 공지영씨는 “김 추기경님이 돌아가시면서 여러 새로운 ‘눈’을 세상에 기증하신 것 같다”고 기렸다.

1969년 우리나라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그는 가난한 사람과 민주화운동을 지원,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 추앙받았으며,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김재홍, 용인=장원주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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