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 중국공안 오인 한동안 말문 안열어 지난 6월16일 중국 조선족 자치구인 지린성 옌지시의 한 허름한 아파트. 취재팀이 방으로 들어서자 TV를 통해 남한 방송을 지켜보던 국군포로 장선생(78) 중위는 깜짝 놀라듯 움찔 뒤로 물러섰다. 취재팀을 중국 공안당국이나 북한 보위부 관계자로 안듯 했다. 장씨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다가 브로커가 “남측 가족들이 보낸 사람”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입을 뗐다.
취재팀이 이에 앞서 한 관계자에게서 “국군포로 장교 1명이 오늘 새벽 두만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이틀 전인 6월 14일. 취재팀은 부랴부랴 중국으로 출국했다. 중국 옌지에서 수소문 끝에 장씨를 억류하던 조선족 브로커를 어렵게 찾아냈다. 취재팀을 장씨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러 온 남측 가족 대리인으로 소개하고 수고비까지 건넨 후에야 장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장씨는 취재팀에게 국군포로임을 확인시키려는 듯 오른쪽 정강이의 10cm가량의 흉터를 가리키며 “포로로 잡힐 때 포탄 파편이 박힌 상처인데 요즘 계속 붓고 있어 걷기조차 어렵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영양 섭취를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장씨는 노령으로 귀가 좋지 않고 발음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장씨는 “하루빨리 꿈 속에서도 그리던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취재팀이 장씨에게 북한에서의 생활을 더 물었으나, 브로커가 더 이상 대화를 못하게 끼여드는 바람에 취재팀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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