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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윤정모 “육신의 주인 아닌 정신의 주인, 그 말 의지해 지옥 견뎠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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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02 07:30:00 수정 : 2023-08-01 18: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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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소설가 윤정모는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묻는 시민단체 등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위안부 문제를 고민하고 천착해온 작가로서 도저히 이해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수배자 몇 사람을 자신의 집에 2년 동안 숨겨준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수배자들과 함께 공부를 했는데, 일제 강점기 정신대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정신대의 참혹한 실상을 파헤친 『정신대 실록』을 읽고서 1981년 천안의 임종국 선생 자택을 찾았다. 임종국은 2만장에 달하는 일제 관보를 비롯한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우리 처녀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록이나 연구 자료 등의 형태로 정리해봐야 대중에게 알리기엔 역부족입니다, 이제는 국민 모두에게 참상을 알리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소설을 꼭 써 주십시오.”

 

윤정모는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1982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펴냈다.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알린 첫 소설이었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돼 천만 관객을 끌어 모으기도 했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에 공연됐다. 이후에도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작품을 쓰면서 계속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그였다.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 막 뛰어들어서 얼굴을 드러낼 때였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예요. 아직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안됐는데, 피해자 할머니들이 너무 가엽잖아요. 정대협 사람들이랑 얘기하다가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집필에 나섰다. 특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에 보관돼 있던 각종 문서와 자료, 영상, 신문 기사 등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연구팀들이 새롭게 발굴한 자료들을 적극 반영했다.

 

소설가 윤정모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학도병 및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다산책방)를 들고 돌아왔다. 소설은 자신의 출생을 의심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온 소설가 배문하가 아버지의 부고 전보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안동 장례식장에 갔다가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아버지 일기장을 전해 받는다. 일기장에는 버마 전선에 종군한 조선인 병사들의 처절한 모습이 담겨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출생 비밀은 알 수 없다. 그는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다가 예상치 못한 엄마의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는 일본군 위안부들의 참담한 진실이, 그리고 슬픈 현대사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이....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을 빠짐없이 다 얘기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내 아들이 아닌 소설가여야 한다. 소설가는 이 얘기를 객관적으로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니?... 사람에겐 육신과 정신의 주인이 각각인 경우가 있다고, 노예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하지만 육신의 주인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정신만 확고하고, 그 정신이 순결하다면 그 사람은 순결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 말 하나에 의지하면서 그 지옥을 견뎌냈다.”(169~170쪽)

 

동시대 사회정치적 문제를 늘 정면으로 다뤄온 중견 작가 윤정모는 왜 다시 일제 강점기 학도병과 위안부 문제를 다뤄야 했을까. 그가 오래 동안 천착해온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무엇일까. 윤 작가를 지난달 27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번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나.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주로 버마인데, 현장에 가서 확인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버마라는 곳이 굉장히 넓어서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구글을 통해서, 영어를 잘하는 딸의 도움을 받아서 최대한 확인해 가며 글을 썼다.”

 

―아빠의 일기장에 담긴, 버마 전선에 투입된 조선인 병사들의 모습은 리얼한데.

 

“제가 어떻게 그것을 다 알고 쓸 수 있겠느냐. 작고한 이가형 작가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모두 사실이다. 제 아버지 역시 학병 출신이었는데, 1944년 말 탈출했다가 붙잡혀 김해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전선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학병들의 참전기를 다룬 이가형 작가의 작품으로는 수기 「버마전선 패잔기」와 소설 『분노의 강』 등이 있다.

 

―작품 후반부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실렸다. 왜 증언이어야 했는가.

 

“정대협에서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록해 펴낸 자료집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할머니의 이름과 위안부로 끌려가 지냈던 장소 등은 조금씩 바꿨다. 핵심 내용은 모두 증언집에 담겨 있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 학생들 사이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의 호소력이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계속 위안부는 가짜다, 창녀다, 하고 공격하니까 신뢰성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할머니들의 증언을 구체적으로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증언과 관계자 실명을 다 적었고, 소설 뒤에 신문이나 근거 자료를 주를 달아서 독자들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남태평양 섬 곳곳에 투입된 위안부가 무려 6만에서 7만 명이다. 위안부를 모집하고 배로 운반하고 군내에 위안소를 운영 관리하는 과정에서 조선 총독부와 일본군과 일본 제국이 관여한 내용을 새롭게 반영했다.”

 

―소설 속에서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엄마 순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으면서도, 순이를 변명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에서 어떤 것이 우러날 수 있나, 하고 마인드나 성품을 계속 연구하게 됐다.(일본군 가운데 아나키스트 가메다 준위도 인상적이다) 가메다 역시 이가형 작가의 책에 나오는 실제 인물이다. 소설 속의 인물은 다 실제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 순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마지막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본군 위안부를 최초로 소설화한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비롯해 기존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1982년에 출간된 작품 속의 위안부 출신 엄마와 아들 배문하의 관계만 그대로 가져오고, 나머지 내용은 모두 새롭게 썼다. 이전에는 위안부 엄마가 위안부를 고백만 했는데, 이번에는 위안부 할머니 11명의 증언을 새롭게 실었다. 아울러 위안부만 다룬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강제 징집된 조선인 학도병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일본군 위안부와 학도병 문제도 함께 다뤘다.”

 

―이번 작품은 윤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생 짐처럼 갖고 있던 것을 한꺼번에 정리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좀 풀렸느냐) 그렇진 않지만, 대체로 많이 한 것 같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다시 읽으면서 제가 다 떨리더라.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소설은 일제 강점기 태평양 전쟁에 투입된 조선인 병사들의 모습과, 일본군 위안부들의 슬픈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폭압적 모습을 좀더 총체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책 읽기를 즐겨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교지에 「지우개」란 글이 실렸다. 중고교 시절, 잡지 『학원』을 자주 찾아 읽었다. 주기적으로 방송국에 원고를 투고하기도 했다.

 

정모야, 넌 앞으로 글을 써라. 학교 선생들은 그의 글을 칭찬하고 자주 격려해줬다. 중학교 1학년 선생은 그에게 시나리오를 쓰라고 권했고, 고등학교 선생은 소설을 쓰라고 조언했다. 교사들의 격려와 주위의 칭찬은 그를 불현 듯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당시 글쓰기 외에 다른 것으로 칭찬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칭찬받고 난 뒤부터 저는 늘 원고지를 들고 다녔어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입학했다. 당시 작가들의 산실이었던 그곳에는 기라성 같은 선후배와 동기들이 적지 않았다. 동기동창 이경자는 이미 고교 시절부터 『학원』에 글을 실었던 스타였고, 또다른 동기 오정희는 재학 중이던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됐다.

 

그래, 나도 한 번 소설을 써보자. 학과 분위기와 동기들의 선전에 자극 받은 그는 장편소설을 쓴 뒤 어느 날 학과 교수인 김동리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서 장편소설을 출간하게 된다. 소설가 윤정모의 원점이었다.

 

1946년 경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윤정모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68년 장편소설 『무늬져 부는 바람』을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밤길』,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님』, 『고삐』, 『들』, 『봄비』, 『나비의 꿈』, 『그들의 오후』, 『딴 나라 여인』, 『슬픈 아일랜드』, 『우리는 특급열차를 타러 간다』, 『꾸야 삼촌』 등을 펴냈다. 특히 미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1989년 작 『고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꼽히며 100만 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신동엽 창작기금, 단재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베스트 셀러 『고삐』는 어떻게 쓰게 된 건가.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가 1986년 서울 시내에서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고 분신했는데, 개인적으로 김세진의 엄마를 잘 알았다. 그들의 죽음에도 미국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전국적으로 메아리가 일어나지 않더라. 대중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소설을 써보자고 생각해 『고삐』를 쓰게 됐다. 그런데 책이 너무 많이 팔려서 많은 학생과 군인들이 책을 갖고 있다가 감옥을 가기도 했다. 죄의식이 좀 있다(웃음).”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주로 리얼리즘 계통의 작품을 써온 것인지.

 

“『님』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도 있다. 다만 르포와 현장을 강조하면서 리얼리즘 작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들』을 쓸 때는 농민들이 데모하는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썼다.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자벨 아엔데(Isabel Allende Llona)의 『영혼의 집』이나 마르게스의 『100년간의 고독』 등을 읽으면서 리얼리즘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얼리즘을 쓰되 문학적인 완성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정확한 사실 또는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문보다는 정확한 사실과 진실, 주인공이나 인물의 심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음악가 윤이상을 쓸 때 음악 공부 8개월 했듯이, 많은 공부나 취재를 한다. 소설은 파급력이 있다. 읽고 진실하다면 또다시 넓혀준다. 『고삐』가 그랬다. 그래서 취재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자료나 책이 있으면 꼭 찾아서 읽는다. 자료를 찾는 일을 잘하는 편이다.(취재나 사실 확인 비중은 글쓰기에서 몇 퍼센트나 될지) 전체를 100으로 한다면, 사실이나 진실을 찾는 것은 40%, 문학적 글쓰기는 60% 정도 될 것이다. 배우고 안 만큼 마구 이야기하거나 써선 안된다. 나는 소설가이니까 문학 역시 훼손시킬 수 없다. 표현이 저속하다든가 격에 맞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성을 지향한다고 인물을 천박하게 그리는 건 지양해야 한다.”

 

―작품이나 작가로서 남은 꿈이나 계획은.

 

“여성, 노동, 분단, 일본 식민지, 미국 문제 등 많은 사회 현실을 다뤄왔는데, 이제 하나 남은 것 같다. 미국 문제를 다룬 작품만 더 쓰면 모두 종료될 것 같다. 엄마가 일본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게 지겹고 창피하더라. 나중에 일본 문제를 꼭 한 번 다뤄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고아원에 있다가 나와서 양공주가 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사는 게 너무 비참했다. 그래서 언제 한번 미국 문제를 다뤄보자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 3시30분쯤 일어나서 집 근처 효창공원을 산책한다. 소설이나 삶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선 두 세 시간 정도 글을 쓰거나 자료를 찾는다. 아침을 먹은 뒤, 외부에 일이 있으면 나가고,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한다. 밤 9시쯤 눈을 스르르. 그의 시간은 늘 문학을 향해서 흐르고 있었다.

 

흔들리는 틀니 때문인지, 그의 손은 자신의 입 주위를 쉽사리 떠나지 않았고, 기자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산산이 흩어지듯 불분명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소설, 그의 삶, 문학 모두. 문학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모든 이야기가 분명해져 왔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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