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국인 정보 1억7000만건 달해
시민단체 “얼굴, 유일무이한 정보
기업들 영리 목적 활용 가능” 비판
당사자 동의 없이 정보 활용 놓고
당국 “관련법 따라 문제없어” 해명
법무부 “보완사항 검토… 대책 마련”

정부가 출입국 관리 등에 활용하기 위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내·외국인 얼굴 사진 1억7000만여건을 민간기업에 넘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얼굴처럼, 쉽게 바꾸기 어려운 생체정보를 제공한 것은 정보인권 침해라며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공익법센터 어필·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AI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법무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공적 목적으로 수집한 생체정보를 민간기업의 얼굴인식 활용 기술개발에 제공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얼굴과 같은 생체정보는 쉽게 바꿀 수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정보로 프라이버시 침해가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AI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 관련 지적은 지난달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법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안면 정보만으로 출입국 심사를 단순화해 시간을 단축하고, 공항 내 위험인물을 자동으로 식별·추적해 테러 등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2019년부터 진행돼왔다.
문제는 법무부가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확보한 얼굴 사진·국적·성별·나이 등 외국인 정보 약 1억2000만건과 내국인 정보 약 5700만건이 당사자 동의도 받지 않은 채 국가와 민간기업의 AI 학습 데이터 등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등의 법적 근거에 따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해당 사업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위법적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출입국심사에 필요한 경우 국민의 생체정보(지문·얼굴·홍채·손바닥 정맥 등)를 수집하거나 관계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생체정보 제출을 요청할 수 있고, 이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돼 있다.
서채완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는 “출입국관리법상 출입국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추상적 규정에서 생체정보가 AI 시스템을 개발할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목적을 도출해내기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가가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제3자인 기업에 제공한 것이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특허를 출원하고 영리 목적 활용까지 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얼굴인식 기술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이번 사업은 위법 여부를 떠나 ‘공권력 남용’에 해당한다며 국가와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생체정보 활용 AI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사람의 얼굴에서 한 번 특징점을 추출해 템플릿을 만들면 그 사람 모르게 식별하고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위험하다”면서 “지난 9월 유엔인권최고대표도 얼굴인식 등 생체정보를 활용한 실시간 원격 감시 시스템은 기본권 침해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얼굴인식 기술 등 고위험 AI에 대한 사용유예를 각국에 촉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법무부와 과기부가 즉각 관련 사업을 중단하고 인권과 헌법에 부합하는 AI 규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또 불법적으로 사용된 모든 생체인식정보와 알고리즘·시스템 등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 이전에 (위법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시작했지만 현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완사항이 있는지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면서 “대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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