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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참극’ 공포 커지는데… 법적 안전 울타리는 ‘느슨’

입력 : 2021-09-28 06:00:00 수정 : 2021-09-28 08: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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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아파트 위층 부부 살인 ‘충격’

한밤 찾아가 흉기 휘둘러 4명 사상
30대 이웃 자수… “다투다 홧김에”
2020년 층간소음 민원 4만2250건
전년比 61% 급증… 2021년 더 늘 듯

기준치 초과 인정사례 7.4% 불과
현장 소음진단도 불복 경우 많아
처벌돼도 10만원 이하 벌금 고작
“갈등 조정권 가진 중재기구 필요”

“공동 아파트 층간소음은 누구나 감안하고 살고 있지만, 이웃에서 직접 사고를 접하고 보니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치네요.”

27일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전남 여수시 덕충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밤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곳에 거주하는 A(34)씨는 위층 주민과 층간소음 갈등을 빚다가 이날 0시33분쯤 흉기를 휘둘러 40대 부부를 숨지게 하고 부부의 60대 부모 2명을 다치게 한 혐의(살인·살인미수)를 받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0대 자녀 2명은 작은 방으로 피신해 화를 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이후 자택으로 돌아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위층 일가족과 평소에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중 홧김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는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달 16일 인천의 한 빌라에서는 50대 남성이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아랫집 주민에 흉기를 던져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달 14일 경기 의정부시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남성이 삼단봉을 들고 윗집에 찾아가 층간소음을 항의하다 경찰이 출동했고, 경남 통영시에서는 지난달 18일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갈등을 빚던 한 주민이 손도끼를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화 상담 신청은 4만2250건으로 전년(2만6257건)보다 60.9%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 층간소음 관련 상담 신청은 3만2077건에 달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화 중재가 증가하고 있지만 주민 간 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전화 상담이 이뤄진 14만6521건 중 4만5308건은 현장소음 진단을 신청했고 이 중 1654건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주민이 직접 소음측정에 나서기도 했다. 여수 A씨도 이달 17일 관계 기관에 층간소음 문제를 한 차례 신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층간소음 분쟁을 법·제도의 테두리에서 해결하기란 더욱 힘들다. 층간소음은 공동주택관리법 또는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른 규제 대상이지만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발소리 등 직접 충격 소음으로 인정되려면 주간에 1분 동안 평균 43데시벨(dB)을 넘거나, 57dB 이상의 소음이 1시간 이내에 3회 이상 발생해야 한다.

 

환경부의 ‘층간소음 상담매뉴얼 및 민원사례집’에 나온 아이 뛰는 소리는 40dB 수준으로 층간소음 인정을 받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층간소음 기준을 초과했다고 인정된 사례는 1654건 중 122건(7.4%)에 불과했다. 현행법상 층간소음 처벌 근거도 경범죄처벌법상 인근소란죄로 1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쳐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저도 ‘고의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

전문가는 아파트 구성원들로부터 층간소음 조정 권한을 위임받을 수 있는 중재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백원기 인천대 교수(법학)는 “공동주택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민원을 접수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자체적 ‘조정기구’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 조정기구는 민원이 들어왔을 때 적극적으로 갈등에 개입해 귀책할 만한 책임이 파악되면 다수가 동의하는 처벌 수위(벌금 등)를 결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늦은 시각에 어린 자녀들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층간소음에는 용인하는 정도를 높게 책정하고 부부싸움, 주취자 등 상식 이외의 상황이 확인된다면 공론화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수=한승하, 인천=강승훈 기자, 안승진 기자 hsh6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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