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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듯 대출·투자 ‘파격 마케팅’… 사행성 조장 ‘경고등’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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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28 06:00:00 수정 : 2021-09-28 08: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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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진 금융의 그늘

금융권 치열한 고객유치 경쟁
토스 , 자유입출금 통장 2%대 금리 지급
예금 상품 홍보하면 개설 순서 당겨줘
증권가선 경품까지 내걸고 적극 공세
안정 우선하는 은행선 “믿음 깨는 행위”

디지털 금융 부작용 따져봐야
2020년 증권사의 신규계좌 절반이 2030
손쉬운 대출·투자로 빚투 가능성 높여
재미로만 포장돼 손실 위험성 가려져
소비자 합리적인 결정 유도 방안 필요

10월 출범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가 자유입출금식 통장에 2%대의 파격적인 금리를 지급하겠다며, 사전 예약자 신청을 받았다. 금리가 타 시중은행보다 높다 보니 고객이 몰리며 신청 개시 사흘 만에 예약 가입자가 50만명을 돌파했다.

토스뱅크의 마케팅 기법은 신생 은행답게 독특하다.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전문 은행인 토스뱅크는 계좌 예약을 하면 즉시 자신이 몇 번째로 개설이 가능한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더해 가입 예약자가 이 상품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홍보하면, 개설 순번을 앞당겨준다.

일례로 13일에 계좌 개설 예약을 한 A씨의 경우 51만번째 계좌 개설 예정자인데, 이를 친구들에게 알리면 5만번째 개설자로 순번이 바뀐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은 A씨의 가입 순번은 약 2주 만에 54만번째로 밀려났다. 이런 마케팅 기법이 불법인 것은 아니지만,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금융업계에서는 전례 없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이 디지털화되면서, 오프라인과 달리 몇 번의 손가락 터치나 클릭만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됐고, 경품이나 특혜를 내 걸고 투자를 불붙이는 금융사 간의 고객 유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손쉽게 금융상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 혁신이라거나, ‘쉬운 금융’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마치 게임처럼 금융상품을 취급하면서 돈의 가치가 ‘디지털 코드’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지속한 저금리 기조로 가계 부채가 연일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마케팅 경쟁이 ‘돈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과잉 투자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뉴스1

◆“홍보하면 통장 빨리 개설”… 경품 내건 유치 경쟁

인터넷 은행 후발주자인 토스뱅크는 초반 세몰이를 위해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에 힘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미 출범한 카카오뱅크가 저금리로, 케이뱅크가 코인 거래소와 손을 잡으며 고객을 확보한 전례를 지켜봤을 것”이라며 “한발 늦게 은행을 문 여는 만큼 출범 초기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토스뱅크는 시중은행은 물론 다른 인터넷은행보다도 높은 자유입출금식 예금 금리로 이미 관심을 끌고 있다. 토스뱅크는 오래전부터 자사 서비스를 홍보하거나 사용하면, 현금을 주는 식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토스뱅크의 고객 유치 방식이 소비자의 금전적 피해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개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예약 가입 고객은 모두 통장이 개설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의 경우 이런 이벤트로 순위가 밀리거나 소외될 수 있고, 일종의 약속이 뒤바뀔 수 있다는 식의 금융 신뢰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앞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공격적 마케팅으로 수신을 빠르게 늘렸다. 금융업의 특성상 수신 경쟁에는 대출 경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토스뱅크는 저금리 이자 상품으로 경직된 대출 시장에서도 초기 점유율 높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토스뱅크의 마케팅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선을 넘은 것 같다. 그런 (순번 바꿔주기 식의) 마케팅을 해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은행에서 할 수 없는 마케팅”이라면서 “은행은 신뢰와 안정을 중요시하는데, 통장 개설 순서가 바뀌는 식의 마케팅은 믿음을 깨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케팅 경쟁은 은행권보다는 증권가에서 더 두드러진다.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증권사들은 신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거래 수수료를 할인에 나서고 있고, 주식 등 추첨형 경품을 내걸고 있다. 새로 계좌를 개설하면 ‘룰렛’ 돌리기 등 추첨을 통해 많게는 수십만원에서 수천원의 주식을 제공하거나 투자금을 지원하는 식이다. 다른 증권사의 투자금을 자사로 옮기면 추가적인 금전적 이익을 주기도 한다. 한 증권사는 한때 돈을 주고도 구매하기 힘든 1000만원 상당의 명품 핸드백을 경품으로 내걸어 구설에 올랐다.

이런 경품 이벤트는 온라인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보 수단이지만, 직접적인 금전을 다루는 금융업의 특성상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각사의 마케팅일 뿐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토스뱅크의 마케팅 방식과 관련, “친구 추천하면 포인트 주는 식인데, 어떤 회사(분야)도 그런 마케팅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증권사의 마케팅까지 정부에서 (관리) 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임 같은 디지털 금융… 부작용 따져봐야

정말 괜찮을 걸까. 우리나라의 가계 대출 증가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레버리지(차입 투자) 비율은 104.9%로 주요 30개국 중 5번째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년층의 빚이 빠르게 늘고 증권 신규계좌 개설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주목된다. 올해 2분기 20·30대의 빚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2.8%로 타 연령층(7.8%)을 크게 상회했다. 올해 초부터 지난 6월까지 20대 신규 대출 증가분의 90%가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에서 발생했다. 또 주요 증권사의 2020년 신규계좌 중 20∼30대 연령층의 비율이 54%를 차지했다.

오랫동안 지속한 저금리 기조가 가계 대출 증가와 빚을 이용한 부동산·주식 투자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디지털 금융화 역시 손쉬운 대출과 ‘빚투’를 일으키는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금융의 디지털화에만 힘을 썼을 뿐,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하지 않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정보 제시 방법에 따라 인간은 경제적인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불합리한 결정을 한다고 경고한다.

주변에서 어떤 금융상품에 가입해 이익을 얻었다고 하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가입해 같은 상품을 사는 식이다. 이용약관이 복잡해 불리한 조항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기도 한다. 디지털 금융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폐해들이다.

게임 같은 마케팅 방식이 사행성과 과잉 투자를 부추기지는 않는지, 무료·당첨 이벤트에 투자의 위험성이 가려지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상품은 일반 상품과 다르게 반품이 안 돼서 금융 사고가 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금융소비자에게 사전에 설명을 충분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재미로 포장해버리면 사람들이 금융에 대한 책임을 알지 못할 수 있다”면서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고, 선물로 포장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부분은 금융당국이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쉽게 은행 계좌나 증권 계좌를 개설하고, 돈도 쉽게 빌려 투자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위험 고지는 부실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모 증권사의 경우 모바일 비대면 계좌 개설 시, 약관 내용이 화면에 다 뜨기도 전에 관련 창을 닫아도 정상적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사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입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상품에 대한 광고와 함께 수익성과 위험성 등 정보를 균형 있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호철 간사도 “마케팅 자체보다는 광고에 치중해 기본적인 상품 설명을 제대로 못 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디지털 금융 사례 분석’에서 금융상품 및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이 정보 및 선택 과부하로 금융 관련 의사결정에서 실수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비자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 금융사 스스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게 연구소의 제언이다.


엄형준, 조희연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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