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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와 왕건이 탐낸 천년고성 상당산성 ‘위풍당당’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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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1 18:00:00 수정 : 2021-09-12 16: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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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가장 잘 보존된 포곡식 산성/후고구려 세운 궁예 산성 축조하고 근거지 삼아/드라마 태왕사신기 등 촬영무대/공남문∼보화정 산성일주코스 4.2㎞, 2시간 걸으며 역사와 마주하는 힐링여행

 

상당산성 공남문 성벽

높은 언덕 위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성벽은 위풍당당하다. 적군의 무수한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청주를 지켜 온 유서 깊은 ‘천년산성’ 상당산성 앞에 섰다. 궁예와 견훤, 그리고 왕건까지 눈독을 들인 산성의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오랜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상당산성 공남문 성벽
상당산성 공남문앞 잔디광장

#청주 파수꾼 상당산성에 오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상당산성 공남문 보루에 오르니 언덕 아래로 시야가 탁 트였다. 적군을 방어하기 아주 좋은 위치였을 것 같다. 상당한 규모의 높은 성벽을 보고 있으면 영화속 치열한 전투장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사다리를 놓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과 위에서 활을 쏘고 뜨거운 기름을 부으며 이를 저지하는 장면들. 성벽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은 처음이다. 덕분에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대조영’,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 소지섭·신현준 주연의 ‘카인과 아벨’의 촬영 무대로 선택받았다.

 

상당산성 공남문
상당산성 공남문 구룡사 사적비

상당산성 여행은 공남문에서 시작한다. 남문 아래 드넓은 잔디밭에는 모자가 배드민턴을 치며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고 곁에서는 강아지가 신나게 뛰어논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사랑받는 곳인가 보다. 공남문으로 오르는 산책로에 보랏빛 맥문동이 화사하게 피어 여행자들 반긴다. 성문과 천장은 주작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남쪽을 관장하는 주작을 그려 넣은 이유가 있다. 침략이 잦은 남쪽의 왜구들을 물리치자는 염원이 담겼다. 성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의 또 다른 성벽이 막아선다. 적군이 문을 뚫고 들어와도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공격을 퍼부을 수 있도록 함정을 판 내옹성이다.

 

공남문
공남문 천정 주작

공남문 보루로 올라서면 좌우로 성벽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폭 1m가량 성벽 1타에 병사 1명씩 맡아서 방어를 했다고 한다. 모두 1176타로 구성됐으니 대규모 군사작전이 가능했던 산성으로 짐작된다. 골짜기를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우리나라 포곡식 석축산성 중 가장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성 안에는 연못 5개와 구룡사 등 사찰 3개,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상당(上黨)’이란 이름이 산성의 역사를 말한다. 가장 높은 곳인 ‘윗무리’라는 뜻으로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이 상당이었던 점으로 미뤄 산성은 백제 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후기에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를 둘러싼 재미있는 역사가 담겼다. 조선후기 승장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궁예가 이곳에 산성을 축성하고 사니 군중이 많아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실제 서문인 미호문 일대 발굴 조사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성문터가 발견돼 궁예가 산성을 쌓았다는 영휴의 얘기를 뒷받침한다. 청주를 근거지로 삼던 궁예는 철원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청주 사람 1000가구를 이주시켜 수도로 삼았다는 기록도 삼국사기 열전에 등장한다.

 

내옹성
공남문 보루 성벽

영휴의 이야기는 완산주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으로 이어진다. 그가 장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주야로 200리를 걸어 성을 뺏은 뒤 서문 밖에 토성을 쌓아 세금을 받아 보관하며 산성 안으로 운반했다는 내용이다. 견훤이 궁예의 후고구려 세력을 밀어내고 상당산성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를 세운 왕건 얘기도 등장한다. 고려와 후백제 간의 대규모 전투다. 지세가 험한 상당산성을 어떻게 뺏을지 고민하던 왕건에게 부하 복지겸이 계책을 제시한다. 서북쪽 방비가 허술하니 남쪽에 군사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밤에 정예병을 서북쪽으로 보내 공격하자는 내용이다. 이 전략은 성공했고 목을 베어버린 병사가 셀 수 없이 많아 냇물이 피로 물들었다. 중부내륙의 요충지를 방어하던 산당산성은 그후 폐허가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구들에게 한성까지 손쉽게 내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방치됐던 산성이 다시 주목받게 된다. 숙종 42년(1716)에 4년 동안 산성을 다시 쌓아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

상당산성 일주코스 산책로
상당산성 일주코스 산책로

#한남금북정맥 정기 받으며 산행해 볼까

 

공남문 보루에서 서쪽으로 성벽길을 따라 오르면 사람 하나 드나들 수 있는 아주 작은 서남암문이 등장한다. 적군 몰래 사람, 가축, 식량을 성안으로 들여오거나 아군을 내보내 성 밖과 연락할 수 있도록 만든 비밀통로다. 남문 앞에 모여든 적군의 후방으로 군사들이 몰래 돌아나가 포위하는 전술 때도 사용됐다. 유사시 적에게 드러나 공격을 받게 될 때는 내부에서 신속하게 암문을 폐쇄할 수 있도록 문 안쪽에 흙더미나 돌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서남암문
치성

암문을 지나면 성벽 바깥으로 툭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등장한다. 성벽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공격하기 어려울 때 옆에서 비스듬하게 보며 공격하도록 치성을 만들었다. 서남암문을 나와 ‘한남금북정맥’ 능선길을 따라가면 산성고개∼출렁다리를 건너 청주옛길을 거쳐 상봉재와 것대산 봉수대까지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공남문∼서남암문∼서문(미호문)∼동북암문∼진동문∼보화정(동장대)로 이어지는 산성일주코스는 4.2㎞로 2시간 정도 걸리며 아기자기한 길이라 아이들도 쉽게 따라 걸을 수 있다. 서남암문을 지나 성벽에 올라서면 청주시내와 미호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진동문을 지나면 사방의 둘레가 시원하게 뚫린 커다란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화정(輔和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전쟁 시 장군이 군사들을 지휘하던 ‘장대’다. 여기서 내려가면 성안 마을로 이어지며 전통한옥마을이 조성돼 있다.

 

상당산성 산책로

유일하게 남은 저수지도 보인다. 높은 지대에 있지만 땅을 파면 물이 나오고, 성안에 연못이 있어 수문을 막아 놓으면 하룻밤도 안 돼 성 안에 물이 가득해 1000명의 군사와 1만마리의 말을 먹일 수 있다고 영휴는 기록했다. 상당산성에서 발원한 물은 동쪽으로 흘러 충주 달천강과 합류해 한강에 이른다는 내용도 사적기에 나온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공남문에서 서남암문까지 갔다가 성벽 안쪽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는 짧은 코스를 이용하면 된다. 30~40분이면 충분히 산성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청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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