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배우 송재호 님을 회고하며

입력 : 2020-12-05 14:00:00 수정 : 2020-12-05 11:40:5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故 송재호 배우의 영화 속 모습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감독 김호선, 1975) 스틸. 컬러 영화인데 스틸은 흑백으로만 남아있다. 네이버 영화

 

지난달 7일 배우 송재호 님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꽤 오랫동안 그의 연기를 봐왔기 때문일까. 마치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소식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인자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함께 나이 든 친구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될 배우 송재호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려볼까 한다. 

 

송재호는 라디오, TV, 영화를 오가며 활동한 배우였다. 첫 시작은 라디오였다. 1959년 부산 KBS 성우로 연기를 시작했고, 1964년 영화 ‘학사주점’(감독 박종호)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드라마 연기도 시작했다.

 

1937년생인 송재호는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다고 한다. 평양 출생으로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고등학교 시절엔 영화 평론 모임 활동도 했고,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국문과에도 진학했지만, 배우가 돼 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데뷔 이후 이만희 감독의 ‘군번없는 용사’(1966), ‘싸리골의 신화’(1967), ‘원점’(1967) 등을 비롯해 ‘춘원 이광수’(감독 최인현, 1968), ‘명동잔혹사’(감독 변장호, 임권택 등, 1972), ‘눈물의 웨딩드레스’(감독 변장호, 1973) 등에 출연했던 송재호를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는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감독 김호선)이었다. 

 

영화 ‘창수의 전성시대’(감독 김사겸, 1975)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KMDb.

 

1970년대 한국영화를 공부하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TV 드라마에서 아버지 모습으로 주로 보던) 송재호의 젊은 모습에 놀랐었다. 송재호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장 집 가정부 영자와 사랑에 빠지고, 군대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까지 다녀와 지금 목욕탕에서 때밀이 일을 하는  창수를 연기했다. 송재호는 당시 30대였지만, 영화 속 20대 창수로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 영화는 창수와 영자가 경찰서에서 우연히 재회하면서 시작된다. 창수는 술집에서 시비가 생겨 경찰서에 와있었고, 영자는 성매매 단속에 걸려 잡혀 온 상황이었다. 창수는 자신이 군대에 간 사이 연락이 끊겼던 영자를 다시 만나 반갑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영자의 모습에 당황한다. 바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로 회상 장면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을 통해 그동안 영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변함없는 두 사람의 사랑도 부각된다. 당시 젊은이들의 패션, 음악 등이 더해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대의 이야기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로 칭해지던 파란만장 여성의 인생을 담은 영화 중 하나인데,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됐다. 세월이 흘러 또다시 재회한 창수와 영자, 영자의 남편과 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영자의 남편으로 특별 출연한 배우 이순재의 모습도 반가웠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흥행 대 성공으로 같은 해 겨울 일종의 속편인 ‘창수의 전성시대’(감독 김사겸, 1975)가 개봉되는데, ‘영자의 전성시대’에 출연했던 송재호, 염복순, 최불암, 이순재 등의 배우들도 그대로 출연했지만, 전편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송재호의 영화 출연은 계속돼,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김호선, 1977),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 임권택 감독의 ‘깃발 없는 기수’(1979),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 등에서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TV 드라마 출연에 주력하면서 영화 출연작이 줄어들다가, 2000년대부터 다시 출연 영화가 발견되는데, 이제는 아버지, 할아버지 연배의 캐릭터로 등장하게 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2004)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2004년에는 3편의 영화가 개봉돼 배우 송재호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4)에서는 경질된 형사 반장(변희봉)에 이어 새로 부임한 반장 역으로 찰진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이며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배우와의 연기 케미도 보여줬다. ‘그녀를 믿지마세요’(감독 배형준, 2004)에서는 희철(강동원)의 아버지로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고, ‘고독이 몸부림칠 때’(감독 이수인, 2004)에서는 주현, 양택조, 김무생, 선우용녀 등과 코믹 연기도 선보였다.    

 

이후 ‘그때 그사람들’(감독 임상수, 2005)에서는 ‘대통령 각하’로,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 2007)에서는 가톨릭 신부로 등장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감독 추창민, 2011)에서는 이순재, 김수미, 유소정 등과 함께 연기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 밖에 ‘용의자’(감독 원신연, 2013)의 (평양 사투리를 쓰는) 그룹 회장,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 2018)의 고종까지 송재호의 다양한 모습을 크고 작은 역할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송재호의 배우 인생을 모두 지켜보진 못했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형사, 대통령, 신부, 목사, 공장 노동자, 때밀이 등 기억하는 영화 속 모습들을 잠시 떠올려봤다. 그는 떠났지만, 영상으로 남아있는 모습을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 배우 송재호 님,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위 기사는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채 '반가운 손 인사'
  • 정은채 '반가운 손 인사'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