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성과 굉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 작품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가 그린 ‘이수스 전투’다. 16세기 중엽이 되면서 르네상스 양식과 멀어지는 그림들이 나타났다. 엄격한 형식주의가 하나의 이상이며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중 알트도르퍼는 현실에서 만나는 비정형적인 형태에 관심을 보였고, 인위적으로 다듬은 정돈된 생각에 대한 반발을 이 그림 안에 담았다.
그림의 내용은 그리스 반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떠나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이라크) 왕 다리우스의 군대를 격퇴시키는 장면이다. 전경과 중경에 창과 칼을 들고 깃발을 앞세우며 전투를 벌이는 병사들이 소용돌이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개미처럼 작은 크기의 병사들과 군중들은 마치 파도의 흐름처럼 출렁거린다.
원경에는 오른쪽의 해가 구름을 뚫고 나와 왼쪽의 달을 물리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알렉산더가 다리우스를 물리치고 거둔 승리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병사들의 갑옷과 성곽이 전쟁이 있었던 기원전 4세기경의 것이 아닌 16세기 당시의 것들로 대체됐다. 알트도르퍼가 과거에 묶여 있는 고정 관념보다 현실에 근거한 새로운 해석이 더 중요함을 암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사람, 풍경, 건물 등을 복잡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서 찬찬히 보아도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원근법적 방식을 회피해서 하나의 시점으로 종합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경의 병사 개개인, 그 뒤의 병사들 무리, 그 무리가 모인 군대로 이어지는 장면을 지그재그 식으로 구성해서 전체를 파악하려면 연속해서 시점을 움직여 화면 위로 향해야만 한다.
전투가 벌어지는 혼란의 세계를 지나 뒤의 성곽을 넘어서면 물과 산과 해와 달이 주인공이 되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에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전투 결과를 알리는 표지판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걸려 있고, 대립과 갈등의 세계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을 암시한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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