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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살며 내집 꿈꿨는데… 이제는 월세 걱정”

입력 : 2020-08-03 18:07:44 수정 : 2020-08-03 18: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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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외면 부동산대책에 거센 비난
임대차 3법 시행뒤 시장 위축 불구
서울 아파트 1월 전세 비중 72%서
매물 줄었는데 7월 76%까지 늘어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주택 위로 비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연 합뉴스

5년 전 결혼과 동시에 서울 양천구에서 소형 아파트를 반전세로 임차한 A(43)씨는 지난해 말 전세로 갈아탔다. 그동안 저축한 돈과 은행에서 싼 금리로 일부 대출금을 보태 3억여원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반전세로 거주하던 4년 동안 60만원씩 나가던 월세는 은행 이자 10만원대로 갈음됐다. 주거비용이 그만큼 줄면서 삶의 질이 높아진 느낌을 받았다는 A씨는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의 종말’이 온다고 하는데, 세입자 입장에서 반갑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나는 자식이 없어 청약 당첨도 어렵고, 이 지역은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매우 낮은 곳이라 기존 주택을 매입할 수도 없다”며 “까딱하다 내년에 다시 월세로 돌아가야 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담은 새로운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한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세로 안정적인 주거를 실현하고 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유주택자 꿈을 이루려던 다수 서민의 실상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3일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성사된 아파트 전세 계약은 6304건이다. 올해 최다를 기록했던 2월(1만3661건)과 비교하면 46% 수준이다. 전세와 반전세, 월세를 포함한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지난달 8344건으로 줄었다. 2월(1만9232건)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경기도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기부동산포털에 올라온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2월에 2만7103건으로 최다를 기록한 이래 계속 줄어 지난달에는 1만2326건으로 내려앉았다. 모두가 임대차 3법 시행에 따라 주택 임대 시장이 급속히 위축된 결과다.

이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상황도 엿보인다. 전세 비중이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 1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72%에 머물렀던 전세 거래가 지난달에는 76%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7월에도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전세 비중은 74%에 그쳤다.

단독·다가구 주택에서도 같은 기간 전세 비중은 45%에서 55%로 상승했다. 다세대·연립도 67%에서 79%로 뛰었다.

A씨의 경우처럼 저렴한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등을 통해 월세나 반전세에서 전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최근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대차 3법 시행이 임박하면서 4년 거주가 가능한 전세로의 이동은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그동안 무주택세대주에게 저렴한 금리로 목돈을 빌려주는 디딤돌대출 등의 시행을 통해 신혼·청년층 임차가구의 주거안정을 지원해왔다. 최근 각종 규제로 대출이 막힌 집주인들이 상환 등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월세의 전세로의 전환에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연합뉴스

8월 이후의 상황은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임차인에게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5% 이내에 묶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벌써 전셋값이 치솟고 매물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날 한국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전셋값은 전국이 한 달 전에 비해 0.32%, 서울이 0.29% 상승했다. 서울은 전세 물량이 감소하면서 강동구(0.70%), 서초구(0.58%), 강남구(0.53%), 송파구(0.50%), 마포구(0.45%) 등을 중심으로 올랐다.

 

서울은 대부분 대단지에서 전세물건이 부족하고 전셋값도 한 달 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넘게 오른 곳도 있다는 게 중개업소 설명이다. 실제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전용 85㎡(12층)는 지난달 31일 전세보증금 14억2000만원에 계약됐다. 이보다 보름쯤 전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 10층의 전세가격은 10억원이었다. 지방에서는 수도이전 논란으로 집값이 크게 뛴 세종이 전세까지 3.46% 급등하며 2017년 11월(3.59%) 이후 가장 크게 올랐다. 전세의 종말이 부숴버릴 주거이동 사다리에 대한 걱정도 크다. 지난달 감정원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56.9%다. 월세 등이 늘어나면 이 비율은 점차 떨어져 임대에서 매매로의 주거이동 발판이 사라질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각종 연구를 보면 전세는 소득에서 주거비로 10%를 쓰지만, 월세는 25% 이상을 쓴다”며 “임대차 3법으로 월세가 보편화해 무주택 서민이 주거비에서 엄청난 돈을 날린다면 자산 축적을 통한 주택이동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4일 오전 국회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협의회를 개최한다. 당정은 이 회의에서 수도권 공급대책을 최종 조율한 뒤 발표할 예정이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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