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식욕을 돋우는 음식은 입만이 아니라 눈과 코와 귀로 음미해야 제맛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음식 고유의 색과 냄새, 음식을 베어 물 때 나는 소리에 오감을 집중할 때, “하늘 아래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밖에 사람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라는 오래된 경전의 말에 감탄을 합니다. 최근 세계의 식단 변화를 통해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지만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씁쓸한 딜레마를 짚어내는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을 읽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먹을까요?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우리는 자기가 사는 지방에서 나오는 제철 재료를 써서 만든 전통음식보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재료를 써서 표준 조립법으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더 자주 먹습니다. 우리는 “속이 텅 빈 풍요” 속에서 음식에 관련한 불행이 결핍이 아니라 풍요에서 비롯된다는 역설에 직면하지요. 생활은 부유해졌지만 식단은 가난해지고, 높아진 삶의 질에도 음식의 질은 나빠졌다는 진실을 확인하는 가운데 비 윌슨의 문제의식은 뾰족하게 드러나지요.

우리 식탁은 햄버거나 피자, 싸구려 치킨,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에 의해 장악되었지요. 이 원인은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외딴 마을에 사는 저소득 소비자들까지 쫓아가는 다국적 식품 기업의 사업 전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트랜스 지방과 가공육들이 넘치는 나쁜 식단, 즉 과도한 칼로리, 필요한 미량 영양소와 단백질 부족, 설탕과 나트륨으로 범벅된 음식들로 모든 가정의 식단이 균일화·평준화되고, 질병과 비만을 부르는 과식과 영양부족이라는 기묘한 불균형이 나타났지요.
우리는 문화의 변화를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얻는 방식의 변화도 그중의 하나이지요. 음식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의례였던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은 훨씬 빠르고 간편한 방식으로 음식을 얻는 시대로 들어섰지요. “배달 앱은 의무 없는 식사의 극치다”라는 비 윌슨의 문장은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냅니다. 음식 배달 앱이 피자나 치킨 같은 특정 음식에 한정되지 않게 되자 음식 문화 전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요. 인류는 그 변화의 최종적인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먹을 게 많아졌다고 더 행복해졌다는 증거는 없지요.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행복감이 더 커진다는 믿음은 잘못이지요.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는 개념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행복이 준다고 말하지요. 최적의 상태에 못 미치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현실에 딱 맞는 개념입니다. 음식 선택의 폭이 넓어진 대신 식문화는 난잡해지고, 우리는 해로운 음식을 더 자주 먹습니다. 부적절한 식단을 마주하고 나쁜 음식을 삼키며 불행해지는 것은 풍요의 시대가 낳은 역설이지요.
음식 선택의 범위가 커졌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지요. 또 다른 고민과 불행이 불거졌지요. “영양 전이는 전 세계적인 입맛의 변화를 불러왔고, 초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판매자들이 즐거움의 장(場)을 장악”한 시대에 건강한 식사에 대한 꿈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이 악순환에서 어떻게 벗어나 건강한 식사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요. 그리고 음식에 대한 정보의 과부하를 일으키는 매체의 융단 폭격 같은 광고나 개인의 삶에 파고드는 소셜미디어와 자기 자신을 차단해야 하지요. 그다음엔 자신의 감각을 이용하여 음식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식단을 찾아야지요. 비 윌슨은 건강한 식사 패턴을 되찾고, “새로운 음식을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고 제안합니다. 한 끼를 찾아 먹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부르는 감각의 향연이지요. 당신이 올 수만 있다면, 우리 기쁜 마음으로 밥 한 끼 함께 할까요?
장석주 시인 인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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