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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코로나 선행’ 인도 배우 통해 본 ‘볼리우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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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9 22:25:17 수정 : 2020-05-29 22: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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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에 영화는 거대 콘서트 / 함께 울고 웃고… 떼창은 필수 / 국민 악당이 국민 히어로 등극 / 역할 향한 야유가 최고의 찬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가 고통받는 팬데믹 시대에, 훈훈한 뉴스가 세계 각지에서 들린다. 특히 이번 주에 가장 회자되는 인물을 꼽자면 아마 인도의 배우 소누 수드(46)이 아닐까 싶다. 악역을 전문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사재를 모두 털어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1만명 이상의 인도 노동자들을 도왔다고 하는데, 일명 ‘발리우드’ 또는 ‘볼리우드’로 불리는 인도 영화 시장 규모 속에서, 영화배우의 위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회에서는 인도 영화와 배우들, 그리고 인도 사람들의 정서와 관습을 엿보기로 한다.

코로나19 이전 시대에서, 인도 사람들에게 영화는 단순히 극장에서 감상하는 오락거리 수준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웃고 울다가도, 노래가 흘러나오면 내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거대한 콘서트장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관 안에서 지켜야 할 공공예절 등은 인도 영화관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예절 따위, 모두 포기하면 편하다. 그저 인도 사람들이 영화를 즐기는 방식으로 함께 즐기면 된다. 일단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면 좋다. 인도 볼리우드 영화는 보통 세 시간이 훌쩍 넘는 데다가, 간간이 등장하는 안무와 노래 장면에서 따라 부르고 춤을 추려면 체력은 필수다. 처음 보는 영화라도, 인도 사람들은 영화 삽입곡을 미리 익히고 연습한 뒤, 영화관 안에서 함께 부르는 것이 공공예절이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만일 인도 영화를 처음 관람한다면, 어떤 장르물이든 중간에 춤과 노래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다.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되거나 서사의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 인도 영화 다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맘마미아’나 ‘레미제라블’처럼 분명 뮤지컬 영화는 절대 아니다. 중간에 대여섯 번 이상 등장하는 군무 장면은 오히려 뮤직비디오에 가깝다. 홍길동 같은 의적 주인공과, 어쩔 수 없이 그를 잡아야 하는 형사가 서로 만나 노려보면서, “나는 네 정체를 알아. 반드시 너를 잡아넣고 말 테다”라는 대사가 흐르는 일촉즉발의 장면. 그러자 난데없이 수십 명의 여성들이 등장해 춤판을 벌이는 식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다가도, 노래가 끝나면 두 주인공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에서 퇴장한다.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인도 사람들에게는 몰입도와 흥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이다. 만일 인도 볼리우드 영화에서 춤과 노래가 관객이 원하는 만큼 등장하지 않으면 그 영화는 분명히 망하거나, 최소한 관객들의 환불 시위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볼리우드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 실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 국민배우 등급은 이 삼박자가 최상급으로 가능한 사람들이다. 국민배우 중에는 샤룩 칸처럼 월드 스타로 거듭난 사람도 있다. 미스월드 1위로 미의 상징이 된 아이슈와라야 라이 역시 영화배우로 전향할 정도로, 인도 안에서 영화배우의 위상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이렇다 보니, 영화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은 사회 현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오늘의 주인공 소누 수드는 악역만 20년을 넘게 연기한 터라, 인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기본적으로 손가락질을 매일 받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인도 사람들의 과몰입 탓이다. 이런 국민 ‘악당’ 배우가 봉쇄령으로 이동길이 막힌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다주고 있다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마 인도 사람들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새 영화에서 소누 수드가 등장하면 어떡하지?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해야 하는데, 화면 밖에서 베푼 선행을 생각하자면 욕을 할 수도 없다. 이를테면, 소누 수드의 이런 선행은 다음번 영화를 즐기거나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안다. 모두를 돕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 악당 전문 배우가, 다음번 영화에서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관객들은 더욱 큰 야유를 보낼 것이다. 아마도 이 야유는 인도 정치인들이나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진정한 영웅이자, 국민들을 위해 애쓴 악당 배우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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