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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90년대 생 며느리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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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20 22:49:09 수정 : 2020-01-20 22: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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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면 시금치도 싫다던 시대 / 어느새 안주고 안받기식 변해 / 새해엔 서로 주고받는 新고부 / 신선하고 따듯한 이야기 희망

1970년대 중반 신문에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 조건 1순위로 남성의 직업이, 뒤를 이어 2순위로는 차남(次男)이 등장했다. 장남과 결혼하면 맏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니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던 셈이다. 90년대생 며느리들은 당시 며느리 후보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의문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가족 특유의 고부관계를 본격적으로 담아냈던 책의 제목은 ‘장남과 그의 아내’였다. 이 제목은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던 시대를 지나 “제 남편이 장남이에요”라고 말하기 시작한 맏며느리의 미묘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이제 장남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실체는 장남이 아니라 그의 아내이며, 장남을 장남답게 만드는 것도 그의 아내라는 다소 도발적인 뜻이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오랜 세월 공고히 유지되던 가부장제가 소리 없이 내파(內破)되기 시작했음의 징후라는 해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친족관계의 변화가 얼마나 눈부신지는 우리 모두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며느리 세대의 변화가 그 핵심에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지. ‘시 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도 싫다’던 며느리들 푸념을 들은 기억과 며느리 세대의 명절 증후군 호소를 들은 지 그리 오래지 않은데, 요즘은 시어머니 세대의 하소연과 탄식이 더욱 빈번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자신들 결혼할 때 반대했다고 며느리가 아예 인연을 끊었다느니, 손자 손녀 보고 싶어 아들네 집 찾아간 어머니를 문전박대했다느니, 며느리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전화라도 하라고 했더니 아들 붙잡고 ‘이혼 운운’했다느니, 김치냉장고를 치웠으니 김장은 이제 더 이상 보내지 말라 했다느니’, 믿거나 말거나 유의 괴담(怪談)이 흘러다닌다.

실제로 ‘고부갈등? 그게 뭐죠?’ 묻는 신세대 며느리를 인터뷰해 보니, 고부갈등 자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며느리 머릿속에 시어머님이 아예 안 계셔서 갈등할 기회조차 없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덕분에 ‘고부갈등의 시대는 가고 장서갈등의 시대가 왔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거의 관심 밖인 듯하다.

신세대 여성들 입장에서 며느리 정체성이 매우 미약함은 몇몇 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30~35세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지 물은 결과, 직업 정체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물론 출산 이후엔 엄마 정체성이 직장인 역할보다 조금 강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긴 해도 만혼이 일반화된 배경에는 여성의 자아 정체성 변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직장인과 엄마 다음으로는 아내-딸-며느리의 순으로 나타났다. 며느리 정체성이 가장 미약하다는 사실은 그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90년대생 특유의 세대 정서인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며느리 노릇과 관련해서도 강하게 감지된다. 시부모님께 생활비를 지원하거나 용돈을 드리면 친정 부모님께도 똑같이 해드리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독박육아야말로 부부관계의 불평등을 대변하는 현상이라는 데 적극 동의하고 있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 시댁과 친정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지원해주고 응원해주길 기대한다.

지난가을 만났던 40대 중반의 남자 교수는, 5년 전부터 추석엔 처가 먼저 설엔 본가 먼저 간다고 했다. 처가엔 아들이 없어 명절 때마다 허전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신경이 쓰였었는데, 본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이후 ‘부부싸움이 눈에 띄게 줄었고, 서로를 향한 배려가 늘어나 기분이 좋다’고 했다.

우리네 친족관계가 일방적인 부계혈연 중심에서 벗어나 양가 중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상호 균형을 잡으려는 ‘양측적(bi-lateral) 친족관계’를 지향해 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고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도 발견되고 있음은 흥미롭다.

그렇다면 우리네 친족관계의 규범 및 정서도 변화된 상황에 발맞추어 과거 당연시되었던 도리나 의무를 ‘탈’(脫)하고 새로운 가치와 공정한 규범을 만들어내야만 할 것이다. 지금 시어머니 세대가 며느리로서 담당했던 책임과 의무를 90년대생 며느리에게 요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시댁 우선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시어머니 세대의 적응과 솔선수범이 그 어느 때보다 필수인 상황이 된 것 같다.

신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 “나 때는 말이야”요, 가장 경계하는 요소가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부모 세대의 ‘속물스러움’이라 한다. 누구네 사위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의 소유자요 누구네 며느리는 뉘 집 딸이라는 식으로, 엄친아 엄친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불쾌하기도 하거니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절대 사양한다.

다만 행여라도 ‘안 주고 안 받기 식’의 냉소적 이기주의만은 경계할 일이다. 한국식 개인주의 특징이라면, 가족의 이름으로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가 부담스러워 이로부터 무작정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것 아니겠는지. ‘장남과 그의 아내’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장남 부부와 시댁관계로서 ‘자유로운 증여’를 제안하고 있다. 시어머니 세대와 며느리 세대가 서로 간의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자발적인 ‘주고받고 되돌려주기’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이제 설이 다가온다. 신선하고도 가슴 따스해오는 신(新)고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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