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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새로운 출발과 희망찬 새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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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0 23:00:00 수정 : 2020-01-10 22: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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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아이크 ‘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한 쌍의 남녀가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얀 반 아이크가 메디치 은행원인 아르놀피니의 뒤늦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린 작품이다. 아르놀피니가 왼손으로 신부의 손을 잡고, 오른손을 들어 혼인서약을 하고 있다. 성직자 앞에서 혼인서약을 하는 관습이 만들어지기 전에 치러진 예식행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얀 반 아이크가 그림 가운데의 거울 안에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 위에 ‘얀 반 아이크 여기에 있다’라는 글도 써놓아 이들의 결혼을 증명하려 한 것 같다. 그림 아래에는 강아지를 그려 놓았는데, 강아지가 충직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결혼서약이 성실하게 지켜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유화물감 발명자로도 알려진 얀 반 아이크는 북유럽 미술이 중세 고딕 미술의 종교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실에 충실한 묘사로 향하게 했다. 그래서 종교적 주제가 아닌 일상적인 결혼 장면을 그렸고, 방법에서도 현실감이 돋보이는 사실적인 세밀묘사를 강조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피엘로가 활동한 피렌체의 방법과는 달랐는데, 전체 구도보다 그림의 세부적 요소에 초점을 두고 정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터럭 하나하나부터 신부의 옷 주름 장식과 천장의 샹들리에까지 모든 부분을 자세히 나타낸 것이 그런 특징을 대변한다. 이런 세밀묘사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현실세계에 충실하려는 생각이 지배했던 북유럽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고, 북유럽의 인쇄술 발달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지금 인쇄술 발달이 낯선 말이 될 만큼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약속을 하고 지키면서 살아간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약속도 있고,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의 약속도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약속은 역시 자신과 약속인 결심이다. 새해가 시작됐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모든 이에게 희망찬 새해가 펼쳐지길 바라며.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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