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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유일무이 작품이 되다… 난 행복한 ‘덕후’ [밀착취재]

입력 : 2019-03-09 16:12:44 수정 : 2019-03-09 1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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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일까지 ‘작가의 특별한 이름, 덕후’ 특별전/‘20년 덕력’ 송정근 작가/ 나무 하나로 전함 21척 재탄생/
한척 완성까지 꼬박 1여년 걸려/“어른들도 나만을 위한 시간 필요”/ ‘I♥건담’ 이윤상 작가/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제품 싫증

한 분야에 푹 빠져 웬만한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지식, 기술을 가진 사람을 ‘덕후’라고 한다. 일본어 오타쿠(御宅)의 한국식 발음 ‘오덕후’를 줄인 말인데, 뜻은 오타쿠와 딴판이다. 일본에서 1970년대 등장한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한다.

요컨대 사회성이 부족해 주변의 눈총을 받았던 사람이 대한해협을 건너온 뒤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주변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으로 바뀐 셈이다. 이런 ‘덕후 정신’은 과학 발전에도 영감을 준다. 국립과천과학관이 지난 5일 ‘작가의 또 다른 이름, 덕후’ 특별전을 연 배경이다. 특별전은 덕후 8명이 출품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배재웅 과천과학관 관장은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특별한 영역을 만들었다”며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도 과학이라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높이 3.2m짜리 건담을 비롯해 목재 전함, 해상전투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승화한 해전 디오라마 등 작품 120여점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송정근(64) 작가가 영국 ‘HMS(Her Majesty`s Ship) HOOD’ 전함을 소개하고 있다.

◆한 척 만들기까지 1500여시간… 손으로 만든 전함의 ‘역사’

전시회에 작품 10점을 내놓은 송정근(64)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했던 영국 ‘HMS(Her Majesty’s Ship) HOOD’ 전함을 비롯해 독일 비스마르크(Bismarck) 전함, 영국 킹조지(King George) 5세 전함, 일본 야마토(大和) 전함, 우리 해군의 대표적인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거나 존재하는 전함 21척을 지난 20여년간 나무 하나만 써서 재탄생시켰다.

송 작가는 회사와 집만 반복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다 전함 제작에 도전했다. 해군 출신인 그는 전에도 전함 프라모델을 다뤘지만,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과감히 장갑을 꼈다. 병충해에 강하고 보존이 쉬운 은행나무를 재료로 골랐다. 전함 한 척을 완성하기까지는 1500∼2000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루에 길어야 4시간 정도만 작업할 수밖에 없다 보니 완성하는 데 꼬박 1년가량 걸리는 셈이다. 마흔 살 무렵 도구를 잡은 뒤 지금까지 만든 전함이 21척에 불과한 이유다. 은행나무를 잘라 깎고 다듬으며 눈이 빠질 것 같은 순간도 자주 마주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송 작가는 “내가 정말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가능했다. 덕후로 불리는 이유”라고 웃었다.

 

20년이 넘는 ‘공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전함의 세밀한 부분을 다룰 땐 애를 먹기 일쑤다. 원래 전함의 외관은 사진을 참고하지만, 모든 배가 관련 자료를 공개한 게 아니어서다. 특히 세종대왕함 도면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자 직접 사진을 구한 뒤 도면 수작업을 거쳐 만들었다. 손수 제작한 모든 전함이 자식 같지만 그중에서도 ‘HMS HOOD’ 전함에 가장 애착이 간단다. 이 전함은 전함 마니아들 사이에서 꼭 갖고 싶은 ‘머스트 해브(Must have)’로 꼽힌다는 게 송 작가의 설명이다.

그가 처음 덕후의 길을 들어설 당시 아내는 거세게 반대했다. 남편이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느라 가정과 가족에 소홀히 할까봐서다. 송 작가는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설득했고 그리하고 있다. 송 작가는 “인생에서 가정의 평화가 정말 중요하다. 가족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전시회장을 찾은 그는 “하루 중 일부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투자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며 “누구나 대놓고 ‘덕후’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세상이 변했다”고 반색했다.

 

◆2년 노력으로 탄생한 초대형 건담…“세상에 없는 걸 만들겠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3.2m 건담의 주인은 이윤상(39) 작가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2년이나 걸렸고 제작비만 1000만원 넘게 들었다. 퇴근 후 틈틈이 짬을 낸 이 작가의 ‘덕력(덕후력)’ 결정체다. 혹시 공대 출신이냐 물었더니 “아니다”라며 손사래 친 그는 이전 직장에서 사내전시 제안도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건담 프라모델에 흠뻑 빠졌다. 그러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시중 제품에 싫증이 났고 중고시장에 나온 특이한 제품은 고가에다 부품도 모자라 구입에 망설여졌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게 여기까지 왔다. 50㎝짜리 건담 제작을 시작으로 1m와 2.1m를 거쳐 오늘의 3.2m에 이르렀다.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걸 만들지 모르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다만 건담 마니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식이 부족해 ‘덕후’라는 타이틀이 아직은 어색하다고. 그러나 전시회 출품 건담의 제작과정을 들어보면 덕후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이윤상(39) 작가가 자신이 만든 높이 3.2m 건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먼저 대형 마켓이나 전문 업체를 돌며 플라스틱 판을 샀다. 건담 무게가 약 350㎏에 달하고 제작 과정에서 버리는 재료를 감안하면 실제 건담에 사용된 플라스틱 양의 2배 가까운 재료를 구매했을 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작가는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주문할 수도 없고 부위별로 만들다 보니 20여 차례에 걸쳐 재료를 샀다”며 “판을 잇고 붙이는 식으로 입체감을 더해 지금의 건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도 송 작가처럼 초창기에는 아내 반대에 부딪혔다. 퇴근 후 작업실에만 틀어박히니 당연했다. 이후 작업 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주말에는 오롯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아내도 양보했다.

이 작가는 “시대와 인식이 바뀌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던 분들이 점점 자신을 드러냈다”며 덕후도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이런 전시회가 많이 열리길 바랐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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