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빅토리아와 같은 살인사건 피해자들이 멕시코의 형편없는 사법체계 탓에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스 아메리카스 푸이블라대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발생한 범죄 중 93%가 신고 되지 않고, 접수된 사건 중에서도 3.6%만 기소된다. 2016년 기준 100개 범죄 중 9건만 유죄가 인정될 정도로 무죄율이 높은 탓에 시민들이 경찰과 법원을 믿고 있지 않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레슬리와 공범들이 저지른 사건은 멕시코 사법체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용의자 중 2명이 한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기소됐지만 경찰의 실수로 사건이 각하됐고, 저명한 변호사를 고용한 용의자 1명은 지난 2016년 5월 석방됐다. 또 2016년 1월에는 아들 살해 사건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아버지가 살해되는 일도 발생했고, 그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빅토리아는 “처음 아이가 사라진 뒤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수사에 적극 나서달라는 요청을 하자 한 경찰관은 전화로 점쟁이를 연결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건 수사 보고서도 엉터리였다고 WSJ는 덧붙였다. 신문이 확인한 사건 보고서에는 용의자와 목격자의 이름의 철자 및 날짜가 틀리게 기재됐고, 증언이 뒤죽박죽 나열된 데다 용의자들이 피해자 몸값으로 얼마를 요구했는지 등과 관련해 5가지 다른 버전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사법기관이 범죄자를 단죄하지 못하면서 강력 사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각종 폭력에 대해 시민들이 무감각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현재 아카풀코에서만 1년 기준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위스, 네덜란드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5~8세 아이들이 조를 짜 남자애들이 장난감 총을 겨누고 여자애들이 손을 묶은 채 범죄 장면을 따라하는 역할 놀이를 담은 영상이 아카풀코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이 영상 속 어른들은 위험한 장난을 제지하기는커녕 웃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네스토르 루비아노 정신과의사는 “어떤 사람도 이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실제 에리카 살인 사건에 연루된 일당 중 4명은 어렸을 때부터 학대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주민 10만명 당 판사 1명꼴로 전 세계 평균보다 5분의 1 가량 적은 사법 인력도 멕시코의 치안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에리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에두아르도 자모라 검사는 자신을 찾아온 빅토리아에게 “여긴 15년 된 사건들도 있다”고 말했다고 WSJ은 전했다.
레슬리 일당으로부터 납치됐지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딸을 둔 조세 미구엘 캄페차노는 협박을 받고 있지만 정의를 세우길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의자 가족들이 당신 딸은 죽지 않았으니 사건을 포기하라고 협박하고 있고, 내 딸은 이 사건 후유증을 아직도 겪고 있다. 멕시코 사법체계는 우리 가족을 돕지 않았지만 (총을 들며) 나는 언제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사진=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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