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지난 2월 의결한 ‘제3차 재난 및 안전관리 기술개발 종합계획’(이하 재난기술 개발계획)에 따르면 폭염 관련 R&D 사업은 기상청·산림청·행정안전부가 공동 참여하는 ‘자연재해 대응 영향예보 생산기술 개발’ 1건에 불과했다. 폭염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 사업의 예산은 303억원으로, 5년 동안 재난기술 개발계획에 쓰는 전체예산 3조7418억원의 0.8%에 불과하다.
그동안 국립기상과학원과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에서 기후변화 관점에서 또는 온열질환자 통계를 바탕으로 폭염의 위험성 등을 연구했지만, 폭염을 재난으로 여기고 다부처 사업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난기술 개발계획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5년마다 세우는 종합계획으로 다양한 재난 상황에 대응할 기술을 개발해 국민 안전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2007년 처음 수립됐다. 제3차 재난기술 개발계획에는 17개 부처의 118개 과제 수행 계획이 담겼다.
자연재해 대응 영향예보 생산기술 개발은 폭염과 침수피해 등 기상현상이 재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예보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사업이다. 기상청 제안으로 시작한 이번 사업은 폭염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분석해 지역과 연령 등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방안까지 예보에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폭염 관련 연구가 미비했던 까닭으로는 법령 공백과 경각심 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재난안전법상 폭염이 자연재난으로 분류되지 않아 기후변화가 아니라 재난의 시각에서 폭염 영향을 분석한 연구는 다소 부족했다. 온열질환자와 가축 폐사 규모 등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최근 늘어났지만 여태껏 온 국민이 경각심을 가질 만큼의 피해를 미친 적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근(메르스), 2016·2017년 경북 경주·포항시 지진의 영향으로 감염병과 지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이번 3차 재난기술 개발계획에 관련 R&D 예산이 다수 반영됐다.
정부 관계자는 “발생 가능한 재난 예측을 바탕으로 관련 연구가 선행되면 좋겠지만 메르스나 지진처럼 온 국민이 경각심을 가질만한 재난이 발생해야 해당 연구가 과제로 채택되는 경향이 높다”며 “내년 R&D 사업에는 폭염관련 연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권 서울보건환경연구원장은 “폭염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려면 기상, 대기환경, 예방의학, 도시계획, 녹지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빅텐트’를 꾸려 함께해야 할 것”이라며 “폭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추산하는 연구도 병행한다면 폭염 연구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