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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자연분만 집착하는 여성들..“고통 없이 출산한 여자 유죄”

입력 : 2018-07-04 14:37:50 수정 : 2018-07-04 14: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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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덜 하다곤 하지만 일본 여성들은 자연분만을 선호한다.
이러한 모습은 출산한 여성들 사이에서 ‘출산격차’로 불리며, 제왕절개나 무통분만으로 출산하면 “자식을 제대로 낳지 않았다”는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 무통분만..“나는 이기적인 여자”
일본 치바현에 사는 30세 여성은 임신 공포에 시달렸다.

출산의 고통이 두려웠던 그는 주변으로부터 “잘 될 거다”라는 위로를 받았지만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끝내 이겨낼 수 없어 결국 무통분만 동의서를 작성했다.

반면 의사는 여성에게 “순산할 수 있다. 무통분만해도 아무렇지 않나”라며 그의 선택에 의문을 품었다.

의사의 말에 여성은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았지만 출산 당일까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민을 이어왔다.

그리고는 ‘참을 수 있는 만큼 참고 견뎌보자‘라는 생각으로 마취를 미룬 후 ’수박이 빠져나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서야 마취를 원했다.

여성은 “여자라면 모두가 겪는 고통에서 도망치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뎠다. 무통분만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들은 자연분만이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로서 실격이라는 어려운 생각을 한다.
■ 출산격차..‘아픔 없이 출산한 여자 유죄’
일본 도쿄에 사는 37세 여성은 노산으로 인해 출산이 원활하지 못해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자칫 산모도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왕절개를 선택한 죄는 다른 엄마들과 격차를 내며 자연분만한 다른 엄마들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들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면 “그럼, 출산의 고통을 모르겠군요. 고통을 꼭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제왕절개한 여성을 엄마들 모임에서 제외한다.

여성은 “출산격차는 여자들 사이에서 중요하다”며 “그 고통을 모르는 여성은 모임이나 그룹에서 소외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출산 격차가 엄마들 모임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분만한 여성들은 말로 비난하지 않지만 차별을 둔다.
■ 엄마실격..‘스스로 아기를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
일본 가와사키시 산부인과의 한 간호사는 제왕절개 후 자신을 스스로 비판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출산으로 기뻐해야 할 여성 중 일부는 “내 힘으로 아기를 낳지 못했다”며 ‘엄마 실격‘ 등 자격을 의심하는 한편, 시어머니의 질책이 뒤따랐다는 몇몇 사례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예로 들며 여성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만대에 오른 그는 자연분만 중 문제가 발생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당시 분만실에서 아기 심장이 멈춘 것을 알리는 날카로운 비프음이 울리자 그는 목숨을 내놓고 출산을 강행했다. 그의 남편도 “아내의 죽음을 각오했다”며 출산하길 바랐다.

산모가 사망할 수 있었던 매우 긴박한 상황. 응급 수술로 그와 아기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아기를 낳지 못했다‘는 말에 지금은 거부감을 느낀다”며 “수술이 아니었다면 아기도 나도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출산이 아닌 다른 통증은 수술을 통해 치유하지만 출산은 자연분만을 숭배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자연분만이 아니면 자녀를 '올바로 낳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여성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 여성들이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이유
일본 여성들이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진 가치관과 모성애 등이 이유로 꼽혔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두 차례 자연분만을 경험한 송미현(재일한국인 3세) 씨는 “예부터 출산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며 “출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픔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일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지금 임신부들에게 전해진 것”이라며 “이러한 고통을 피한 여성과 동일시된다면 그것을 견딘 여성들이 보상받지 못하는 게 된다. 그래서 자연분만한 여성을 치켜세우는 거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육아 등 앞으로 더 힘든 일을 견딜 수 있다는 생각, 나만 달라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 인공적이지 않은 순수한 출산 선호 등 다양한 의견이 전해졌다. 이러한 생각에는 ‘모성애’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앞선 이유 등으로 ‘출산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성루카국제대 카타오카 교수는 “‘어떠어떠하게 자녀를 낳고 싶다‘고 생각해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출산 방법을 두고 자신을 비판하는 여성이 많지만 방법으로 가치를 결정지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방법으로 가치를 결정지어선 안 된다. 모두 소중하다.
방법을 두고 좋고 나쁨을 가리기보다 출산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방법이 의미를 높이거나 줄이진 않는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 아사히신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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