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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안채운다고 “하루 15만원씩 위약금”…노예계약 횡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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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8 09:00:00 수정 : 2018-05-17 21: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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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⑧-ⓐ] 근로계약 및 사규 등 ‘계약 갑질’ 만연
<편집자주>

“회사 안은 전쟁터요, 회사 밖은 지옥이다.”

국가 및 사회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됐다는데,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이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원인 또는 이유를 찾아가자면, 우리들의 삶이 가장 많이 머무는 직장도 그 연루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직장 앞에서 멈춰섰다는 지적도 많으니까요.

오너 갑질,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공무원 갑질, 대기업 및 본사 갑질, 을의 갑질, 임금 갑…질, 괴롭힘 갑질, 잡무 갑질, 노동시간 갑질…. 참 말도 많습니다.

세계일보는 우리들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부조리한 실체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보도는 직장인들의 ‘온라인 해우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참여 부탁합니다. 혹시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주위에서 겪고 있는 갑질이나 괴롭힘, 부조리가 있다면 그 증거와 함께 알려주십시오. 확인이 가능하고 공유할 가치가 있다면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보를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번호 02-2000-1181.
“회사의 모든 규정과 규율, 규칙 등을 절대 준수하겠음…사내 또는 관계회사 간의 전출, 전보, 전환, 출장, 대기 등의 발령이나 상사의 업무상 지시,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음.”

지난해 논란이 됐던 생활용품 판매업체 ‘다이소’의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압적인 근로계약 이행각서의 일부다.

다이소 측은 또 회사의 허가 없이 방송, 집단행동, 시위, 유인물 살포 등을 하거나 이에 동조 편승할 경우 면직 또는 어떠한 조치도 감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담기도 했다. 21세기의 근로계약서라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하고 폭력적이며 불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비합리적인 근로계약서와 고무줄 같은 사규 등 ‘계약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를 거부당하고 있고 불합리한 계약 내용을 강요당한다. 회사 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거나 개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20일까지 접수된 전체 제보 5478건을 분석한 결과 불합리한 근로계약 관행과 고무줄 같은 사규 문제를 지적한 제보가 각각 203건(3.7%)과 137건(2.5%)으로 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서는 황당 협약서로 대체…교부도 “차일피일”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 측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교부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갑질119’와 사회적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회사원 A씨는 지난해 한 회사에 입사했지만 몇달간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회사 측에) 근로계약서 교부를 요구했는데 몇달째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제17조)은 중요한 근로조건을 포함한 근로계약서를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작성, 교부할 의무를 부여한다.

지난 2월 세계를 감동시킨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일부 계약 갑질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노컷뉴스 등에 따르면 스키 전문요원들은 동계올림픽 전후 팀장이 일부 팀원을 지속적으로 성희롱하고 성추행하자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조직위는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월말 전문요원들을 해고한 뒤 전문요원들이 부당해고라고 항의하자 “근로계약을 체결한 게 없기에 부당해고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직위 측은 “업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책임, 손실 또는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조직위를 상대로 어떠한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업무협약서를 체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스키 전문요원들은 조직위 측의 주장한 업무협약서를 본 적도 없다며 조직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뒤 이를 직장갑질 119에 제보했다. 
◆“이른 퇴사 불가, 위약금 15만원씩 내라” 현대판 노예제도

근로계약서에 노동자들에 불리한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이를 어길 경우 과도한 금전적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회사원 B씨는 지난 2월 한 택배회사 직원으로 입사해 2박3일간 무급으로 택배일을 배운 뒤 근로계약서를 쓰고 회사 소유의 1톤 화물차의 단독 배송을 시작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해야 했던 B씨는 월급이 너무 적으면서도 하는 일은 너무 많고 힘들다고 판단해 팀장에게 퇴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택배회사 측은 “근로계약 때문에 90일간은 절대 (퇴사 등) 움직일 수 없다”며 3개월간의 추가 근무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그만두면 계약서대로 하루 15만원씩 차감하겠다고 엄포했다.

B씨는 이후 매일 팀장에게 사직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사 측은 받아주지 않았고, C씨는 얼마 후 팀장에게 “너무 힘들다, 이러다가 가정이 파탄 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C씨가 출근하지 않은 다음날 지점장으로부터 “(근로)계약서대로 계약이 만료되는 날까지 하루 15만원씩 차감하겠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임금은 고사하고 되레 돈을 내야 할 판이었다. C씨는 “지금 저 같은 직원이 몇 명 더 있는 상황인데, 회사의 근로계약과 약관 협박에 의해 퇴사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짜 현대판 노예계약과 같다”고 개탄했다.

◆황당 ‘확약서’ 요구하거나 잠수 막는다며 ‘보증금’ 요구도

정식 근로계약서는 아니지만 각종 불합리한 요구를 담은 확약서나 비합리적인 보증금을 요구하는 ‘계약 갑질’도 있다.

학습지 교육사업을 하는 한 유명 출판사는 최근 소속 학습지 교사들에게 “학습지 교사가 퇴사 후 6개월 이내 동종업계로 이직해 기존 관리하던 회원을 지도하면 과목당 50만원을 내야한다”는 황당한 확약서 서명을 강요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심지어 학습지 교사가 퇴사를 통보하고 계약해지 신청서까지 작성했는데도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퇴사를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원 D씨는 얼마 전 면접에 통과하고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게 됐다. 그런데 회사 측은 이른바 ‘잠수’타는 것을 방지한다며 “퇴사할 때 다시 주겠다, 30만원을 대표의 계좌로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A씨는 회사의 요구가 황당해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로 제보했다.
◆주말 수당 없애고 대기시간은 “근로시간 제외” 갑질

버스기사 등은 주말이나 휴일 수당을 받지 못하고 사고 등 과실에 대해선 가혹한 벌금이나 수리비 부담을 떠안는 경우도 있다.

경남의 한 관광버스 업체는 버스 기사들과 근로계약을 맺으면서 주말과 휴일 수당을 보장하지 않으면서도 연착 등으로 배차에 차질이 생기면 버스 기사에게 수십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 수리비도 기사가 떠안도록 하는 근로계약을 맺기도 했다.

운전을 위한 대기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포함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시중은행 은행장 운전기사 E씨는 지난해 근무시간을 오전 7시부터 밤 10시로 하는 근로계약서 문제를 제기했다. 즉 근로계약서에는 5시간을 휴게시간으로 규정했지만, 대기시간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이라는 점에서 계약 갑질이라는 거다. 운전기사 E씨는 “차에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앉아 기다려야 하는데, 이것은 휴식이 아니니 (근로시간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니까 회사는 싫으면 나가라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위기에 휩쓸려 찬성” 고무줄 사규 개정

회사 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악하는 ‘사규 갑질’도 적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10년째 재직 중인 직장인 F씨는 지난해 회사의 일방적인 임금피크제 사규 개정에 사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즉 사회 변화에 맞춰 정년을 연장한다며 늘어난 정년에 대해선 임금 피크제를 적용하는 내용이었다. F씨는 “회사 측에서 개략적인 설명을 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적용 실제와 효과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도 못한 채 간부들부터 서명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찬성 서명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인천지역에 자리잡한 한 중소기업은 지난해말 올해부터 도입되는 주 52시간제에 따른 야간수당 및 휴일 수당 인상에 대비한 사규 개정안을 미리 마련해 직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두기도 했다.

◆전문가들, “계약서 꼭 작성해야…내용 확인하고 불합리 시정 요구해야”

직장갑질119의 스텝으로 활동 중인 박성우 노무사는 계약 갑질 문제와 관련,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근로계약서 작성은 2012년부터 법제화됐지만 아직도 일부 소규모 사업장에선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계약서를 작성하고 주는 걸 사회적 관행으로 정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근로계약서를 쓸 때 확인서나 확약서 등을 세트로 쓰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퇴직할 때는 30일 이전에 통보하고 갑자스럽게 그만두면 위약금을 낸다’는 등의 불합리한 내용은 무효이니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꼼꼼하게 내용을 읽어보고, 불합리한 내용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며, 잘 모를 경우 노무사 등 법률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취업 규칙(이른바 ‘사규’) 문제와 관련, “구체적인 복무규율 등을 규정하고 있어 굉장히 중요하지만 직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 측이 보여주지 않는 건 범죄로, 늘 게시하고 비치되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취업규칙을 개정 또는 개악할 때는 구성원 과반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는데 실제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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