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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약자들을 위한 연대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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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06 22:36:01 수정 : 2018-04-06 2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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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한 사람의 사회적 폭로와 관련해 1984년 미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승소 사건인 ‘젠슨 대 에벌리스 광산 사건’을 영화화한 ‘노스 컨츄리’(감독 니키 카로)가 2005년 개봉된 바 있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친정에 얹혀사는 싱글맘 조시 에이미스(샬리즈 시어런)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일보다 6배 임금이 높은 광산에 취직하게 된다. 이후 남성 광부들에게 성폭력과 성희롱을 당하게 되자 그녀 혼자서 이에 대항하는 재판과정이 리얼하면서도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에이미스가 의지하는 친구인 글로리(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으로 광산에 출근하지도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여성 광부들은 직장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남성들의 성폭력과 성희롱을 참는 것은 물론 이를 문제시하려는 에이미스에 대해 오히려 경계심을 갖는다.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마저, 남성들 고유의 경제 영역에 들어온 여성을 괴롭혀 자진해서 퇴사하기를 유도하는 남성 동료들의 생각에 동조해, 에이미스와의 불화는 점차 극대화된다.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는 그녀 혼자서 탄광마을을 먹여 살리는 회사를 상대로 싸우기보다는 2명 이상의 동조자를 구해 ‘집단소송’이 된다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재판과정에서 점차 생각을 바꿔가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가는 과정이다. 순종적이던 에이미스 엄마가 먼저 남성중심적인 남편에게 스트라이크를 일으키자 그가 각성하게 되고, 그가 동료들에게 에이미스가 당신들 동료의 딸임을 강조하며 설득하자 남성광부들도 서서히 생각이 바뀌게 된다. 병든 글로리까지 재판정에 참석해 그녀의 남편을 통해 의견을 밝히자, 같이 피해를 보았던 여성 광부들이 함께 일어서게 되는 과정에서의 감동이 영화가 끝나도 오래 뇌리에 남는다.

미투 운동의 확산은 많은 사람이 성폭력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투 운동이 잠깐 머물다 지나가는 양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는 질 들뢰즈와 같은 많은 현대 철학자가 추구하는 중심전복적 사고와 맥락을 함께 하기 때문인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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