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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진화 '작은 기부'] “부자만 기부하나요”… 서민들의 ‘십시일반’ 세상 밝히다

입력 : 2017-12-17 20:45:04 수정 : 2017-12-17 2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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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기부 패러다임, 보편적 기부로 진화 / 한 달 아르바이트비·자녀 축의금…‘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벗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부로 바뀌어 / “소외계층에겐 작은 관심도 큰 힘” / 국정농단 사태·이영학 사건 겪으며 국민 불신 커져… ‘기부포비아’ 확산 / 사랑의 열매 모금목표액 16%에 그쳑1 감시위 모니터링 등 투명성 팔 걷어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나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나눔이 재력가나 유명인 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누구나 정을 나누는 기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금 운영의 투명성이나 올바른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달라지고 있는 기부 문화와 현장 분위기 등을 살펴본다.

#1. 백선비(16)군은 최근 난생 처음 한 아르바이트로 받은 월급과 저축 일부를 더해 마련한 1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백군은 올해 진학한 경북 경산 문명고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것에 반발해 자퇴를 결정했다.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백군은 빵집에서 한 달간 아르바이트로 번 월급 75만원과 평소 저축으로 모은 25만원을 더해 100만원을 기부했다.

장애인복지관과 노인복지회관은 물론 최근 포항지진현장 등에 이르기까지 평소에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 그는 올 들어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포비아(기부+공포증)’가 퍼진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에 마음을 굳혔다. 백군은 “정부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잘 쓰였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내가 마련한 돈으로 작게나마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로 생애 처음 번 돈과 저축을 모두 기부한 백선비군(오른쪽)과 가족.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아들의 결혼식 축의금을 기부한 충남 부여군 은산면 김순영 이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2.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김순영(57) 이장은 올해 아들을 장가보내며 들어온 축의금 1500여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했다.

수박 농사로 생계를 이어온 그는 평소 기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최근 부녀회 등 각종 지역협의체를 통한 불우이웃돕기가 주춤한 것도 김 이장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김 이장의 결정에 가족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취지에 공감하며 존중하기로 했다.

김 이장은 “아는 사람들이 좋은 취지로 준 돈이 더 좋은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며 “기부는 항상 실천이 어렵기 때문에 마음먹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거액은 아니지만 형편에 맞게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온정의 손길이 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유명인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기부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모인 기부금은 법적·제도적 기준에 의한 정부 기준과 쓰임에 차이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는 취지는 같지만 복지사각지대 해소나 취약계층의 자립지원 등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 보완작용을 해내는 셈이다.
17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모금회는 개인형 기부 프로그램인 ‘나눔리더’와 단체형 프로그램 ‘나눔리더스클럽’을 출범,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지난 6월 시작된 것으로 나눔리더는 개인이 1년에 100만원 이상, 나눔리더스클럽은 단체가 3년간 1000만원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하면 된다.

가정 단위인 ‘착한가정’, 중소자영업자가 참여하는 ‘착한가게’ 등의 프로그램에도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 손길이 모이고 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고액기부에서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기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참여 수준(금액)을 넘어 자원봉사처럼 연대의 의미도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시민의 참여에 힘입어 모금회는 지난해 5453억원을 사회 곳곳에 지원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580억원이 빈곤 위험에 처한 이웃의 기초생계비 지원에 쓰였다.

모금회의 기금 배분은 재난구호 및 저소득층 응급지원 등의 사업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복지 증진 등 사회복지활동을 펼치는 다양한 기관 및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개인에게 이뤄진다. 다만 정부나 다른 단체로부터 사업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들의 경우 상황 자체로 좌절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손 내밀어 줄 곳 없이 현재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절망이 사실 더 큰 고통으로 작용한다”며 “꼭 크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관심과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지를 되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까지 두 달 가까이 진행되는 사랑의열매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모금액은 지난 9일 기준 648억원이었다. 이번 목표액(3994억원)의 16.2%로 2015년 같은 시기의 20.1%(690억원)가 모였던 것에 비하면 약간 낮은 열기다.
27.9도… 뜨거워지는 ‘사랑의 온도탑’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가 27.9도를 가리키고 있다.
남정탁 기자
올해에는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기업의 참여가 위축됐고 이영학 사건 등으로 국민적 불신감이 커진 탓에 사회 전반에서 기부 동참 분위기가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비슷한 시기(12월15일)에 목표액(3588억원)의 16.2%(581억원) 모금에 그쳤지만 1주일 정도를 남기고 온도탑이 100도를 달성한 바 있다.

따뜻함의 열망으로 모인 금액인 만큼 집행 과정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모금회의 운영위원회가 기금의 집행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면 사회복지 현장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배분사업평가지원단에서 기관 현장방문 및 회계·사업평가 등을 통해 검증한다. 또 현안이나 지역사정 등의 여러 사정에 맞게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앙회·17개 시도지회별 분과실행위원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외부감시 측면에서는 17개 시도지회별로 시민들이 모인 감시위원회의 모니터링도 진행된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올해 특히 이영학 사건 이후로 기부금 사용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에 투명하게 운영 중인 대다수의 사회복지기관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시민 참여를 독려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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