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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김정은의 핵(核) 독주… 냉엄한 ‘브레이크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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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20:14:39 수정 : 2017-08-11 20: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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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한반도 정세 / 2007년 김정일 강온 양면 전략 구사 / 김정은 시대, 제재 속 경제 사정 호전 / 核억제력 뒤 숨어 체제 유지 움직임 / 8월 ICBM 2차 시험발사 강행 / 남·북 회담 제의 등 노력 또 물거품 / 核 확보 땐 정세 주도권 장악 불보듯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북한은 완전히 다르다. 새 정부에 참여할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이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머물러 있을까봐 걱정이다.”

지난 5월 대통령선거 직후 한 국제정치학 전문가가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정부는 지난달 17일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제의했으나 북한의 반응은 없었다.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며 대화 동력을 유지하려 했지만, 북한은 같은 달 28일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차 시험발사를 강행해 우리 측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가 남북 관계가 호조를 보였던 2007년의 기억에 취해 북한의 전략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4일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첫 시험발사가 성공하자 수행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일과 김정은의 전략은 다르다


19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최악이었다. 냉전 종식으로 공산권의 경제·군사지원이 사라지면서 수십만명의 주민들이 굶어죽고 무기 도입도 중단됐다. 체제 붕괴 위기를 극복하려면 협상을 통한 시간벌기와 경제적 이득 챙기기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결과물이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다. 북한은 1000㎿e급 경수로 2기와 중유 연 50만t을 제공받는 대신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 핵활동 전면 동결 및 기존 핵시설의 해체를 약속했다. 하지만 김정일은 협상을 통해 경제적 실익을 얻으면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등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핵·미사일 기술 기반을 유지·발전시켰다.

덕분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나은 여건을 갖춘 채 집권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속에서도 경제 사정은 개선됐다. 이를 토대로 김정은은 아버지의 유산을 발전시켜 실질적인 핵억제력으로 체제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 2007년 한 차례에 불과했던 핵실험은 다섯 차례로 늘었으며 탄도미사일 사거리도 1만㎞급까지 늘렸다. 핵보유국 지위를 굳힌 뒤 협상을 주도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문재인정부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반도 정세 주도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보유국은 주변국과 갈등을 빚을 때 재래식 군사력을 사용하고픈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핵보유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이나 전면전을 감행할 나라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1969년 3~9월 중국과 구(舊)소련은 국경에서 수차례 무력충돌을 일으켜 100여명이 사망했다. 중국은 1979년 2~3월 베트남을 침공했으며 1980년대에도 중국과 베트남 양국은 국경에서 분쟁을 벌였다. 1999년 5월 파키스탄군이 인도와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카르길 지역을 점령하면서 2개월 동안 양측이 카슈미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정전협정체결 64주년인 7월 27일 판문점에서 북한 병사들이 정전기념 행사에 참석한 참전국 대표단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어떨까. 핵억제력을 확보하면 휴전선 일대에서 국지도발을 감행한 뒤 군사적 긴장완화를 명분으로 대화를 제의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한 2014년 북한은 핵억제력을 키우는 한편 동해상으로 수십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해상사격훈련 등 재래식 군사위협도 병행했다. 2015년 8월에는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및 포격도발을 감행해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위기는 8월 25일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군총정치국장이 판문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북한의 준전시상태 해제 등에 합의하면서 해소됐다. 하지만 북한의 4·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됐다.

북한이 도발→대화를 반복하며 ‘판 흔들기’에 나선다면 우리 정부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북한은 2007년의 북한이 아니다. 세련된 외교적 대화보다는 핵무기를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정부가 2007년이라는 꿈에서 벗어나 2017년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으면 북한의 도발에 또다시 휘둘리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꿈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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