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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택시운전사' 속 국도극장 이야기

입력 : 2017-08-05 14:00:00 수정 : 2017-08-04 17: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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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또 한편의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지난 2일 개봉했다.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 2007), ‘26년’(감독 조근현, 2012)이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택시운전사’는 그곳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광주에 간 독일인 기자와 그를 손님으로 태운 서울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먼저 광주로 들어가려는 서울택시 운전사와 기자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뒤이어 그들의 시선으로 당시 광주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순간순간 서울 사람과 광주 사람들의 시선으로 낯선 외국인의 모습도 목격한다.

실화가 주는 무게감과 깊이감에 송강호, 토마스 크레치만, 류준열, 유해진 등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실감나는 캐릭터들이 더해져 웃다가 화나다가 울다가 보면, 순간순간 ‘그땐 그랬지’를 느끼게도 된다. 세트와 소품, 의상, 음악 등이 재현해낸 1980년대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말이다.

영화의 첫 시작에서 들려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1979년에 발표된 노래로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에겐 그 시절을 소환하는 추억의 노래이기도 하다. 힌츠페터 기자가 미스터 김의 택시를 타는 곳은 국도극장 앞인데, 국도극장 역시 그 시절을 지나온 서울 사람들에겐 추억의 영화관이다. 

춘자는 못말려 국도극장 신문광고 1980.05.13


영화 속 국도극장 앞 장면은 나름 옛 영화관 앞거리를 재현해냈는데, 극장 벽면 가득 ‘춘자는 못말려’(감독 김선경, 1980) 간판도 걸려있다. 확인해보니, 실제로 ‘춘자는 못말려’는 1980년 5월 16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됐다. 2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그리 인기를 끈 영화는 아니었지만, 요즘도 활동 중인 김형자, 송승환, 박원숙 등이 출연한 영화다.

국도극장은 을지로4가에 있던 서울시내 대표적인 개봉관으로 일제강점기인 1913년 ‘황금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됐다.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운영이 되었는데 좌석수 1400 여석의 규모였다. 1942년 주인이 바뀌면서 ‘보총극장’으로 이름도 바뀌었고, 해방 후 적산 불하를 통해 주인이 다시 바뀌면서 ‘국도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됐다.

몇 차례 얘기한 적이 있는데, 1950~70년대 영화관은 스크린이 1개인 단관영화관이었고, 개봉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과 이미 개봉된 영화를 받아 상영하는 재개봉관으로 나뉘었다. 또한 개봉관은 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방화관’과 외국영화를 상영하는 ‘외화관’으로도 나뉘었다.

서울에는 12개 안팎의 개봉관이 있었는데, 모두 1000석이 넘는 규모였고, 종로, 을지로, 광화문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국도극장은 대표적인 방화관으로서 1950~70년대 한국영화 흥행작 중 다수가 국도극장에서 개봉됐다.

국도극장이 방화관으로 명성을 떨친 배경으로는 지리적인 위치도 거론되는데, 주변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이 주로 찾는 영화관으로서 외국영화보다는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유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영화의 주 관객층은 중년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국도극장은 1999년 철거되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 자리에 들어선 ‘호텔 국도’의 이름을 통해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국도극장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은 1980년과는 많이 달라졌다.

광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겉모습이 바뀌었다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목격한 이들의 기억은 더더욱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힌츠페터 기자가 촬영한 영상도 남아있으니, 기억하려고 노력만 한다면, 잊힐 리도 없을 것이다.

그때는 도로를 막고, 시외 전화선을 끊고, 신문과 라디오, TV를 통제해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막았지만, 이제는 그런 눈 막음이나 귀 막음이 통하기는 힘들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그 시기를 살아온 관객들은 추억 소환과 함께 당시에는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목격해보기 바란다. 그 시기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은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기 바란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가 추가됐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이 남아있기에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영화 속 그때 그 일은 실화다.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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