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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대반란… 혼 ‘복싱 전설’ 파키아오 눌렀다

입력 : 2017-07-02 20:43:36 수정 : 2017-07-02 23: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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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전원 판정승으로 WBO 웰터급 챔피언에 가로·세로 6m에 불과한 작은 사각 링 한가운데서 두 남자가 뜨거운 주먹을 주고받았다. 한 선수는 프로복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설, 또 한 선수는 이 경기 이전까지 그 누구도 이름을 몰랐던 철저한 무명이었지만 둘은 마치 오랜 라이벌이라도 되는 양 주먹을 섞었다. 피가 튀기고 눈두덩이 부어올라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둘은 12라운드 내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쉴틈 없이 치고 받는 혈전을 이어갔다. 결국 경기는 무명이 전설을 꺾는 대이변으로 마무리됐다. 뻔한 승부일 것으로 예상됐던 경기가 프로복싱 역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로 마감되는 순간이다.

안면 강타 제프 혼(오른쪽)이 2일 호주 브리즈번 선코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WBO 웰터급 챔피언전에서 매니 파키아오의 얼굴에 강력한 오른손 훅을 꽂아넣고 있다.
브리즈번=EPA연합뉴스
명경기의 주인공은 호주의 무명 복서 제프 혼(29)과 8체급 석권에 빛나는 필리핀의 영웅 매니 파키아오(39)다. 혼은 2일 호주 브리즈번 선코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WBO 웰터급 챔피언전에서 파키아오와 12라운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0-3(113-115 113-115 111-117)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새로운 챔피언에 올랐다.

경기 도중 버팅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파키아오(왼쪽 사진)와 경기 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오른 제프 혼의 얼굴은 이날의 경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준다.
브리즈번=EPA연합뉴스
승리한 혼은 이 경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8강까지 오른 뒤 프로로 전향해 무패가도를 달리며 세계 랭커로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낮은 인지도 때문에 큰 수입을 올리지 못해 최근까지 고향인 브리즈번의 고등학교에서 임시 체육교사일을 겸업했다. 그러다 인생 최대의 기회가 왔다. 복싱스타 아미르 칸(31)과 펼쳐질 예정이던 파키아오의 방어전이 자금 조달 문제로 좌초되며 혼에게 도전 기회가 돌아온 것. 혼은 곧바로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인생 최대의 기회를 잡기 위해 나섰다.

이처럼 잃을 것이 없었던 혼은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강력한 돌주먹을 자랑하는 전설을 상대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전략이 승리를 견인했다. 혼은 1라운드 시작 이후 곧바로 파키아오를 상대로 거센 압박을 시작하더니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긴 리치를 앞세워 상대의 접근을 막고, 전략적으로 거친 플레이를 펼쳐 파키아오의 기세를 꺾는 전략도 섞었다. 파키아오는 6라운드에 머리가 부딪히는 버팅으로 오른쪽 눈가에서 피가 흐르며 더욱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복싱 전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경기 초반 예상치 못한 공세에 당황하던 파키아오가 중반 이후 기세를 회복하며 특유의 정확한 펀치를 혼의 얼굴에 꽂아넣기 시작했다. 파키아오의 공세가 시작됐음에도 혼의 투혼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경기는 판정으로 이어졌다. 두 선수의 투혼에 경기장에 모인 관중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성을 보냈고 경기가 혼의 승리로 결정되자 홈그라운드에 모인 호주팬들의 환성은 열광으로 변했다.

지난해 4월 은퇴를 선언했다 11월 링에 복귀해 바로 WBO 웰터급 챔피언에 오른 파키아오는 이날 1차방어전 패배로 2015년 5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0·미국) 전 이후 약 2년2개월 만에 통산 7패(59승 2무)째를 기록했다. 복싱 전설을 꺾고 스타덤에 오른 혼은 17승 1무로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한편 혼과 파키아오는 경기 뒤 재대 결 의사를 밝혔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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