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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싸, 당장 돌아가자"부터 대변인 성추행까지…역대 '한미정상회담'

입력 : 2017-06-24 09:38:00 수정 : 2017-06-24 1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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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8일 미국 방문길에 올라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1952년 12월 초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나라를 찾아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한 이래 이번이 64번째 한미정상회담이다.

역대 한미정상회담 중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의미가 남달랐던 몇 몇 정상회담들을 살펴본다.

◇ 역대 한미정상회담 일지

▷이승만(2회)

1차:1952.12.2-12.5 =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방한,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

2차:54.7.30 = 이 대통령 방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회담

▷허정(1회)

3차:60.6.20 =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 허정 국무총리 면담

▷박정희 (7회)

4차:61.11.14 =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 방미,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

5차:65.5.18 = 박정희 대통령 방미, 존슨 대통령과 회담

6차:66.11.2 = 존슨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7차:68.4.17 = 박 대통령 방미, 존슨 대통령과 회담(호놀룰루)

8차:69.8.22 = 박 대통령 방미, 닉슨 대통령과 회담(샌프란시스코)

9차:74.11.22 = 포드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10차:79.6.30 = 카터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전두환(3회)

11차:81.2.2 = 전두환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12차:83.11.14 = 레이건 대통령 방한, 전 대통령과 회담

13차:85.4.26 = 전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노태우(7회)

14차:88.10.20 = 노태우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15차:89.2.27 =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방한, 노 대통령과 회담

16차:89.10.17 = 노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7차:90.6.6 = 노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8차:91.7.2 = 노 대통령 국빈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9차:91.9.23 = 노 대통령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뉴욕)

20차:92.1.6 = 부시 대통령 방한, 노 대통령과 회담

▷김영삼 (8회)

21차:93.7.10 = 클린턴 대통령 방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

22차:93.11.23 = 김 대통령 시애틀 APEC 정상회담후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워싱턴)

23차:94.11.14 = 보고르(인도네시아)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24차:95.7.27 = 김 대통령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25차:96.4.16 = 클린턴 대통령 방한(제주도), 김 대통령과 회담

26차:96.11.24 = 마닐라(필리핀)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27차:97.6.27 = 김 대통령 유엔환경특별총회(뉴욕) 참석중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28차:97.11.24 = 밴쿠버(캐나다)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김대중(10회)

29차:98.6.9 = 김대중 대통령 국빈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0차:98.11.21 = 클린턴 대통령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

31차:99.7.2 = 김 대통령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2차:2000.6.9 = 김 대통령, 오부치 전 일본총리 장례식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3차:2000.9.7 = 김 대통령, 천년정상회의(뉴욕) 계기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4차:2000.11.15 = 브루나이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35차:2001.3.7 = 김 대통령 방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담

36차:2001.10.19 = 상하이(중국)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37차:2002.2.20 = 부시 대통령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

38차:2002.10.27 = 로스 카보스(멕시코)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일 정상회담

▷노무현(8회)

39차:2003.5.15 = 노무현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

40차:2003.10.20 = 태국 방콕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1차:2004.11.20 = 칠레 산티아고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2차:2005.6.11 = 노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43차:2005.11.17 = 부산 APEC 계기 경북 경주 정상회담

44차:2006.9.14 = 노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45차:2006.11.18 = 베트남 하노이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6차:2007.9.7 = 호주 시드니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이명박(11회)

47차:2008.4.19 = 이명박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48차:2008.7.9 = 일본 도야코(洞爺湖) G8(선진8개국) 확대정상회의 계기 정상회담

49차:2008.8.6 = 부시 대통령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0차:2008.11.22 = 페루 리마 APEC 정상회의 계기 정상회담

51차:2009.4.2 = 이 대통령, G20 런던 금융정상회의 계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52차:2009.6.16 = 이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3차:2009.11.19 = 오바마 대통령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4차:2010.6.26 = 이 대통령, G20 토론토 정상회의 계기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5차:2010.11.11 = 오바마 대통령 G20 서울 정상회의 계기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6차:2011.10.13 = 이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7차:2012.3.25 = 오바마 대통령,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계기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박근혜(6회)

58차:2013.5.7 = 박근혜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

59차:2014.4.25=오바마 방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60차:2014.11.11 북경 APEC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61차:2015.10.16=박근혜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62차:2016.3.31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담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한미 60번째) 

63차:2016.9.6=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문재인(예정)

64차:2017.6.29일=문재인 대통령 방미, 트럼프와 백악관 정상회담

▲ 한국방위를 몸으로 보여준 아이젠하워-이승만 만남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2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찾아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위 사진>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미국 대통령이, 그 것도 2차대전 영웅 아이젠하워가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 쿠데타 일으킨 박정희, 미국으로 건너가 케네디와 담판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최고개건회의 의장은 그해 11월 14일 미국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정희 의장은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통해 전세계에 쿠데타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경제개발을 위한 미국의 차관을 기대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비민주적 절차로 정권을 잡은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박정희는 독일 등 다른나라로 차관 루트를 찾기에 이르렀다.

▲ 1965년 5월 박정희-존슨 회담, 월남전에 발목잡힌 미국이 보기 드물게 한국에 부탁하는 처지가 돼

1965년 5월 18일(미국시간 5월 17일) 열린 박정희-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부탁하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한국이 월남에 전투병력을 파견해 수렁에 빠진 자신들을 좀 도와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존슨 대통령은 이를 위해 전용기를 한국으로 보내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태우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또 존슨 대통령은 각종 경제 및 기술원조, 개발차관 제공, 사전 허락없이 주한미군을 철수치 않는다는 등 전례없이 많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 1979년 6월 30일 박정희-카터 회담…박정희 "주한미군 빼든지 말든지, 그렇지만 인권은 말하지 마라" VS 카터 "당장 짐싸라, 미국으로 돌아가겠다"  

1979년 6월에 있었던 박정희-지미 카터 회담은 두고 두고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한국과 미국관계, 권위주의와 인권, 주한미군과 자강론, 유신정권 몰락 단초 등 수많은 논쟁거리가 있다.

당시 박정희의 억압정치는 군데 군데 누수현상을 보였고 '유신타도' 데모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바른 생활'하면 그를 연상시킬만큼 엄격한 민주주의자였던 카터가 본 박정희는 민주주의 억압자에 불과했다. 이에 카터는 독재자 정권유지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는가라며 '미군 철수'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6월 30일 열린 정상회에서 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해도 좋지만 장비는 두고 가라, 돈을 달라면 주겠다"면서 "하지만 인권문제는 간섭하지 말라"고 강하게 나갔다.

기분이 상한 카터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당장 미국으로 돌아 가겠다. 짐을 싸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카터 집권이후 박정희가 자체 핵 및 미사일 개발을 검토했고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한국정권의 가장 강력한 받침돌이었던 미국정부와의 관계가 틀어진 결과, 10·26으로 이어졌다는 논리까지 내 놓았다.  

▲ 2003년 5월 노무현-부시 회담, 이라크 파병으로 미국 의심 거둬 

보수주의자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미국은 진보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자 자신들과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 아닌가라고 경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도움없이는 북한과의 의미있는 대화가 불가능함을 의식, 취임 79일만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3년 5월 15일 백악관에서 만난 부시는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고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 한미동맹을 회복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과 보수적인 미국정부 사이에서 많은은 고민을 했다. 

▲ 2013년 5월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내용보다는 청와대 대변인 일탈행위로 어두운 미래 암시

2013년 5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다. 두사람은 로즈가든 산책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보다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일탈행위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

윤 대변인은 주미 한국대사관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람들이 대통령의 방미성과보다 이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정권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으며 각종 사건, 스캔들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불행의 그림자가 이때 만들어졌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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