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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친정에 가는 건 여행 아닌 효행
자유 만끽한 시간, 삶에 커다란 활력
공항에 들어서면 항상 사람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하다. 일상을 떠나려고 하는 여행자들은 겉보기에도 다른 세계에 간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넘친 모습이다. 그런데 놀러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학을 가는 건지 아빠와 딸로 보이는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렇듯 공항에는 각양각색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공항이 일터인 사람도 많다. 정장 스타일로 통화하는 비즈니스맨도 있고 여행가이드도 있다. 항공사 지상 승무원을 비롯해 보안관, 안내원, 매점판매원, 청소부 등 공항을 직장으로 다니는 여러 부류의 사람은 각자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공항에는 외국인들도 많은데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여행자일까, 아니면 한국에 정착하는 사람일까 상상해 본다. 공항에 있는 사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면 여행자와 생활자라 할 수 있다. 여행자는 일상을 빠져나와 다른 세계로 가는 기회를 얻은 사람이고, 생활자는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다.

내가 공항에 갈 때는 거의 일본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인데 그때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부모님이 계신 곳에 가는데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현지 가족들은 나를 며칠 있으면 다시 떠나는 여행자로 맞이한다. 나는 그 먼길을 효도하러 왔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부모님은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내가 없어도 일상을 잘 지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효도는 자기만족일 뿐 나 역시 여행자였다.


여행은 어느 정도 자유가 있어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도 본래 위치에 돌아와야 하고, 자유를 얻기 위한 여행이라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럼에도 평생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살아가는 이가 있다. 일본 에도시대 전기의 마쓰오 바쇼라는 시인이다. 그는 일본 고유의 5·7·5의 17음(音)형식의 단시형(短詩型)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오쿠노 호소미치’라는 나그네 기행에는 ‘세월은 다시 오지 않는 나그네이고/ 오고 가는 해 또한 나그네로다/ 배 위에서 생애를 보내는 뱃사람, 말과 더불어 늙어가는 마부 또한 나날이 객지이고/ 객지가 그들의 집이로구나’라고 말머리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인생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일본 전국을 기행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마음은 여행자인 채 ‘객지에서 병들어도 꿈은 겨울 들판을 헤매는구나’라는 하이쿠를 남기며 하늘나라로 가셨다. 바쇼의 마음세계는 현실에 맞서고 힘들더라도 자유로웠고 그러한 마음으로 눈에 비친 경지를 글로 옮겨 갔다.

사람은 여행을 갔다 오면 눈에 비추어진 세상이 저절로 가치전환이 되어서 같은 일상도 새로운 느낌으로 보이는 것이 제일 좋은 점이 아닐까. 하지만 쉽게 여행자가 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계절이 오고 가며 다른 경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계절도 나그네라는 바쇼의 말대로 봄의 옷을 입은 나그네가 찾아올 때가 머지않은 것 같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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