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도 여전히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걸 쓰겠죠”

[조용호의 나마스테!] 중편 ‘풍경소리’로 이상문학상 받은 구효서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면서 대학교수 자리를 거부했어요. 그동안 전업작가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책을 내고 두 달만 지나면 인세 수입이 끊기기 시작하니 원고료 수입에 기댈 수밖에요. 중·단편 장편 가릴 거 없이 닥치는 대로 썼어요. 책은 많이 안 팔리는데 권수만 늘어난 거죠. 독자들에게 한 번 스타는 영원한 스타 작가인데, 그런 작가는 사실 그렇게 많이 안 써도 돼요. 차분하게 다음 작품 준비기간도 갖고, 그러다 보니 더 잘 쓰게 되는 측면도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쓰고 또 쓰고 쓰니까 작품에 대한 밀도 같은 게 아쉬울 때도 많아요.”

올해 뒤늦게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구효서(60)를 만났다. 이상문학상은 주로 등단 10년차 내외가 받거나 그도 아니면 엉뚱하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미 다른 주요 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두루 받은 구효서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의외였다. 이미 오래전 이 상을 받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주변에 많다고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진작 그에게 갔어야 할 상이 늦게 배달된 것뿐이다. 수상 때문이 아니라 한눈 팔지 않고 문학 그 자체에 헌신해온 등단 30년차 ‘전업작가’의 한 전형으로 그를 만난 이유다.

등단 30년차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구효서. 전업작가로 한눈 팔지 않고 문학의 본령에 충실하게 복무해온 그는 “누가 나를 보고 성실하다고 하는데 사실 난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남정탁 기자
“주와 객도 잠들면 뭐가 남지? 이 세상은 낮 아니면 밤이고, 여자 아니면 남자이고, 주관 아니면 객관이고, 이 모든 게 잠들면 뭐가 남지? 풍경소리는 주관과 객관이 포착할 수 없는 제3지대의 존재이고,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상징계도 상상계도 아닌 실제계의 소리랄까? 풍경소리가 띵강띵강 들리는지, 땡강땡강인지 오로지 언어를 매개로 전달되는 거 아닌가요?”

이번 수상작 ‘풍경소리’는 기존 서사 문법에서 탈피한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주와 객이 희미하고 남는 건 소리뿐이다.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이 모티브로 차용돼 “주승이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 전개가 이루어지다 “저 손아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라는, 주도 객도 잠이 들어 풍경소리만 남는 청정한 여운이다. 희미한 활자와 진한 활자의 서술 주체가 다르고, 마지막에 이르면 바람소리만 남아 기이한 위안을 주는 작품이다. 그는 등단 이래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해 왔다.

“어쨌든 밥 먹고 글만 써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계속 써 내야 하는 엄청난 시달림을 견디려면 노력과 의무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재미 있으려면 동기가 새롭게 제공되어야 하잖아요? 동기의 약발이 떨어지면 또 딴짓을 해야 하고… 끝없이 하고 싶다는 동기 유발이 안 되면 써지지 않거나 쓰는 데 의미가 없었어요. 거기에 변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변덕이야말로 나의 힘입니다.”

그는 자신이 30여권의 책을 써내는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있는 것 같지만 없고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 같은 현상’이라고 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정말 존재하는 건 사랑인가, 사랑한다는 언어인가, 언어가 없으면 존재 자체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라는 언어가 없다면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결국 존재보다 우선하는 것은 언어라는 매개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언어를 다루는 일이어서 ‘있음과 없음’의 존재론이 그의 소설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하나, 그의 소설을 공통으로 관류해온 특징은 ‘기록’에 대한 천착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강화도에 관련된 모든 사료를 찾아 ‘늪을 건너는 법’을 썼고 누군가 남겨 놓은 인도 고대 아쇼카왕 시대의 기록을 '비밀의 문'에 인용했다. 독자들이 기록의 실재를 믿고 문의하지만 그가 인용한 기록은 조선시대 순한문에서부터 중세국어까지 모두 자신이 창작한 것이었다. 그는 “독자를 속인 것이지만 사실 내가 만들어낸 기록만 조작된 것이냐”고 되물었다.

구효서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990년대를 여는 작가군(신경숙 윤대녕 이순원 박상우 공지영 등)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이 시기야말로 자신의 ‘화양연화’라고 일컬을 만큼 빛나던 때였다고 회고한다. 전국에 문예창작과가 대거 신설되고 각 대학에서 학위와 무관하게 작가들을 전임강사로 초빙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구효서에게도 제의가 들어왔지만 전업으로 살겠다는 ‘치기’를 부렸다고 한다. 그 뒤 한국 소설이 점차 독자들에게 외면받고 시장이 협소해지면서 어려워질 때 후회도 했지만 지금도 큰 미련은 없다고 했다. 다만 그에게는 여전히 쓰고 또 써야 하는 노동이 부여되고 있을 따름이다. 서울 중계동 집에서 공릉동 작업실까지 매일 샐러리맨이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듯 오전 9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이 자전거 출퇴근이야말로 갈수록 체력이 중요한 전업 노동자에게 각별한 것이다. 오후 6시에 퇴근, 집에서는 드라마와 영화도 보면서 논다.

지난해 여름에서야 작업실에 에어컨을 들여놓았다. 그 전까지 여름이면 근처 화랑도서관을 이용했다. 그가 동인문학상을 받은 ‘별명의 달인’이라는 소설집을 냈을 때 “구효서의 일상은 소설이라는 갱도를 쉼 없이 굴착하는 노동자”라면서 “그 노동은 대단히 규칙적이고 성실한 것이어서 수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썼던 기억도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등단한 뒤 ‘한국문학’과 ‘문학사상’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1991년 전업을 선언했다. 그는 전업이 가져다준 강박감과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병까지 얻었다고 했다. 윤대녕의 소개로 절에 들어가 아무것도 안 쓰고 안 읽고 그냥 밥만 먹다가 회복된 후 쓴 소설이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이었고, 이 작품이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1990년대 작가로 순풍에 돛을 달았다. 

“흔히 나이가 들면 구세대라고 통칭하잖아요? 세대적으로 구세대이지만 작품도 구세대 스타일이라고 예단하는 건 곤란하지요. 나이만으로 구세대문학으로 가두어 싸잡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각기 차별성이 있잖아요? 구세대인데 그 구세대들은 각기 어떻게 다른지 누군가 봐줘야 하는데 이 작업을 아무도 안 하고 아예 청탁조차 하지 않는 거예요.”

구효서에게는 여전히 청탁이 밀려드는 편이지만 ‘구세대’ 작가들이 작품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그는 본다. 쉼 없이 형식 실험을 시도하는 그이로서는 당연하게 이즈음 젊은 후배들 작품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인데 그중에는 자신이 팬이 된 김엄지 같은 후배 작가들도 있다. 처음에는 그들을 경쟁 대상으로 봤지만 지금은 그냥 즐기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젊은 작가들 작품에 들어 있는 영혼과 감성은 “흉내 내거나 공부해서 따라잡을 문제가 아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날렵하고 명민하게 서사의 언어를 희롱해온 소설가 구효서. 한눈 팔지 않고 문학의 본령에 충실하게 복무해온 그가 궁극으로 완성하고 싶은 소설은 어떤 경지일까.

“무슨 작품을 쓸지 누가 물어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당면해 있는 작품에 몰두할 뿐입니다. 다음에도 여전히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걸 쓰겠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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