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인가 역사 포장한 상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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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점심으로 ‘경성○○’이란 이름의 음식점에서 햄버그스테이크를 먹고 저녁에는 회식 후 맛집골목에서 2차를 물색하다 선술집 ‘경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년간 복고풍이 유행이라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았다가 문득 ‘이제 일제강점기 콘셉트까지 유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꺼림칙했다는 것이다.
최근 외식업계에서는 ‘경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1900년대 초를 재현한 분위기를 내는 음식점들이 늘고 있다. 경성은 일제가 조선의 500년 수도에서 대한제국의 ‘황도’로 이어진 한성을 격하하고 경기도 소속으로 재편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 음식점들 중 일부는 모더니즘 콘셉트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일부는 일제강점기를 적나라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일부는 한옥촌인 북촌과 서촌에도 자리하고 있다. 북촌, 서촌은 서울시가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면서, ‘역사도심’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경성’을 상호에 쓰는 A업소는 간판에 이름과 함께 ‘일본식 이자카야’라는 설명을 일본어로 표기하고, 1920∼30년대 분위기가 나는 목조건물처럼 외관을 꾸몄다. 또 다른 업체 B프랜차이즈는 홈페이지에서 ‘경험하지 못했지만 경험할 수 있는 옛 추억의 공간, 경성◇◇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다’고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B프랜차이즈의 한 업소는 벽에 ‘kejio(게이조)’라는 문구가 쓰인 일제강점기 시절 옛 서울시청사 자료사진을 붙이기도 했다.
C프랜차이즈는 홈페이지에서 ‘푸근한 한국의 주막과 고급스러운 일본식 이자카야를 조합해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럽고 부담스럽지 않은 한국적인 미가 어우러진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외식업계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 지역인 서울 삼청동, 홍대, 이태원, 강남 지역 현황을 보면, 최근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25일 각 자치구에 따르면, 종로구와 마포구, 용산구, 강남구 등 4개 지역에서 ‘경성’을 상호로 등록된 일반음식점은 36곳이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7곳이 최근 2년간 생겼다.
시민들 반응은 엇갈린다. A업소를 본 유모(37)씨는 “요즘 흔히 쓰여서 많이 본 이름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경성이 일제가 서울을 격하하며 붙인 이름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반면, 김모(31·여)씨는 “우리나라가 워낙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일 같다”며 “그런 간판을 달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시키거나 수정하도록 계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촌 인근에서 일하는 김모(47)씨는 “스스로 ‘조센진’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한글간판만 달도록 한 적도 있었는데, 이런 변화는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고 매우 창피한 일”이라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고석규 목포대 전 총장(사학)은 “일제 식민에 대한 회상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부추긴다면 문제겠지만, 그런 의도 같지는 않다”며 “최근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모던보이, 모던걸을 묘사한 것이 많이 나왔고, 당시 신문물과 그에 대한 호기심의 정서를 상업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식민지 시대 서울과 근대적 문물이 유입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A업소의 경우 이름뿐 아니라 외양까지 1920∼30년대 서울 황금정 거리를 방불케 한다”며 “이런 것이 허용되다니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어 “업소 주인들의 상혼과 달리 일본인 관광객들은 조선총독부의 ‘선정’ 분위기를 ‘엔조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사진=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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