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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뭣이 중헌디" 모병제보다 안보 민주화가 더 시급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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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5 08:05:00 수정 : 2016-09-25 09: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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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본부는 군부대가 아니라 정부조직법에 따른 정부 부처다”

2004년 11월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이 언론사 데스크 간담회에서 밝힌 이 발언은 군 안팎에서 회자될 만큼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정부조직법과 국군조직법에 규정된 문민통제 원칙에 입각한,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채롭게 들리는 게 대한민국 국방부의 현실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여야 잠룡들을 중심으로 모병제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군 인력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보다 더 중요한 국방의 문민화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12월 중국 국방부장과 통화하는 한민구 국방장관. 국방부 제공
국방 문민화의 핵심은 국방장관 임명 자격이다. 국방장관에 민간인이나 전역한 지 오래된 예비역을 임명해 폐쇄적인 군 의사결정에서 발생하는 전현직 군 관계자의 유착 등 폐해를 뿌리 뽑고, 진정한 의미의 문민통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 대치 국면에서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데 필요한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현재의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 “전역한 지 10년 지난 군인만 국방장관 임용하자”

국방장관 임용 자격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 의원은 지난 6일 예비역 장군이 현역 신분을 벗어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을 경우에만 국방장관에 임용할 수 있게 하는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장관뿐만 아니라 국방부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는 국장급 이상의 16개 직위 상당수가 특정 군 출신 현역, 예비역 장교들”이라며 “1961년 이후 지금까지 국방장관은 모두 예비역 장성 출신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피아는 각 군에서 엘리트로 통하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나 군 내외부 유력자 사이에 끈끈한 관계를 형성해 군 내부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군피아의 독식은 패권적 국방 운영체제로 이어진다”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국의 국방장관은 대부분 ‘육사 출신-4성 장군-60대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난다”며 “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 된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군 관련 경험이 없는 여성 정치인도 국방장관직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군인은 현역을 면한 날로부터 7년이 지나지 않으면 국방장관으로 임명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의 ‘국방재조직법(Defense Reorganization Act)’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김 의원은 “군 장성 출신 국방장관 임명에 제한을 두는 이번 개정안은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이 탄생하는 초석이자 국방부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안보 민주화’의 밑그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 발의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김해영 이찬열 의원,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 정의당 심상정 노회찬 윤소하 이정미 추혜선 의원, 무소속 김종훈 윤종오 의원이 참여했다.

지난해 8월 북한 지뢰도발이 일어난 육군 1사단 GP를 방문한 한민구 국방장관. 국방부 제공
◆ 군복 벗자마자 장관 취임, 군에 부메랑으로 날아와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한 민주헌정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문민통제다. 하지만 국방부는 국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군을 대표하는 기관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이는 국방장관을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역 장군들이 맡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는 합동참모본부 의장이나 참모총장을 역임한 직후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07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김장수 국방장관은 내정 당시 현역으로서 육군참모총장을 맡고 있었다. 2009년 9월 취임한 김태영 장관도 내정 당시 합참의장이었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상희 장관은 2006년 11월까지 합참의장을 지냈다.

이렇게 군복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방장관이 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방부의 정책결정에 문민 성격이 간과되고 있다. 군사적 효용성과 군사보안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사전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0월 대전서 열린 지상군 페스티발에서 어린이들이 장갑차 탑승 체험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또한 특정 개인이 군사령관에서 총장, 합참의장, 장관으로 이어지는 자리를 경력단절 없이 독식하면서 그에 따른 군 인맥이 형성됐다. 이로 인해 방위사업 비리 등 정책결정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군 인사 결과에 대한 반발과 잡음, 투서와 청탁, 줄서기 등도 난무하면서 군 내부 혼란을 초래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국방개혁도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그 방향이 왜곡된다. 퇴임 이후 예비역 선배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보내야 하는 장관들은 ‘선배’들의 압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자꾸 그러면 군 골프장 목욕탕에서 쫓겨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흘려듣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의 희생을 요구하는 개혁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장관은 대단한 용기를 가졌거나 잃을 것이 없는 사람뿐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군은 제복 입은 특수집단이며, 외부에 눈을 돌리면 안된다’는 현역 시절 인식을 국방장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언뜻 보면 군의 정치적 중립으로 비춰지지만 군 내부의 순혈주의와 폐쇄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같은 특성은 국방부 산하기관 임원직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3일 국회 국방위 소속 우상호 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 산하기관은 임원 선발 시 공개모집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2012년 국방부가 작성한 내부 지침에 따라 예비역 장군들을 임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침에 따라 전쟁기념사업회, 국방과학연구소, 한국국방연구원, 군사문제연구원, 군인공제회, 국군복지단 등 28개 임원 직위는 장군 정원비율(육군 71.8%, 해군 14.6%, 공군 13.5%)을 기준으로 육군 15개, 해군3개, 공군3개, 육군/연구원2개, 공무원1개, 전문경영인 4개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수학능력시험에 늦은 수험생을 모터사이클에 태워주는 육군 헌병. 육군 제공
우 의원은 “자체 조사결과 현재 국방부 산하기관 임원직은 이 지침 지정 기준 및 적용 비율과 90%이상 일치한다”며 “국방부 산하기관이 임원직을 공채하는 척 하며 뒤로는 내부 지정 기준을 정해놓은 것은 군인과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며,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나눠먹기식 인사는 국방부 산하기관의 설립목적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군에 대한 민간의 불신은 더욱 커진다. 군이 필요로 하는 예산과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하는 민간 분야의 신뢰가 없으면 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군에서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군 내부 비리부터 없애라”는 반박이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군의 폐쇄성과 순혈주의의 폐해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수년전부터 민간인이나 전역한 지 오래된 인물을 국방장관에 임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십조원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면 민간의 선진 경영기법에 능숙한 민간인 장관이 적합하며, 전역한 지 7~10년이 지난 예비역은 군 인맥 형성이 불가능하고 현역보다 민간분야를 더 잘 이해하고 있어 정책결정의 대국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포격도발 1주년을 맞아 육군 장병들이 훈련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일각에서는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사적 식견이 부족하거나 현재 상황에 어두운 예비역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군 출신 장관들이 위기를 잘 관리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 위협에만 신경쓰면 됐던 냉전 시절과 달리 민주화 시대 국방장관은 민간과 군의 접합점으로서 군에 대한 정치적 후원과 국민적 지지 획득 등 정무적 업무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한 도발 대비는 합참의장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국방장관의 임명 방식에 대한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권은 국방 공약을 제시하며 ‘안보 지킴이’를 자처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공약에 포함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지금,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모병제보다 문민통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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