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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눈뜨고 코 베인 것 같아요" 취준생 울리는 '유령자격증'

입력 : 2016-08-29 21:23:21 수정 : 2016-08-30 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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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고 취업에 도움 된다고…무턱대고 땄다간 ‘유령자격증’ / 쏟아지는 비공인 민간자격증… 낭패보기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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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 코 베인 것 같아요.”

서울의 한 전문대 졸업반인 전모(23)씨는 지난달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자기소개서(자소서)에 넣을 자격증을 찾다가 ‘학교폭력예방지도사’에 눈이 멈췄다. 최근 이슈인데다 진로가 유망하다는 말도 있고, 최종 면접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1주일이면 취득 가능하다는 온라인 강의 업체의 설명도 매력적이었다.

전씨는 강의료와 시험 응시료, 자격증 발급비 등 16만원을 내고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 기업의 온라인 자소서 ‘자격증’란에 해당 자격증을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씨는 “일반 민간자격은 해당사항이 없었다”며 “아무래도 돈만 날린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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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두 달 전 퇴직한 김모(58)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김씨는 한 온라인 평생교육원에서 홍보하는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고령화 시대에 수요가 늘 것이라는 말이 솔깃했다. 하지만 김씨는 “온라인 강의 수강료로 30만원을 결제했는데 내용이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게 대부분”이라며 “알고보니 ‘노인심리상담사’라는 동일한 이름의 자격증만 100개가 넘었다”며 허탈해 했다.

민간자격이 올해 2만개를 돌파했다. 하반기 공채 시즌을 앞둔 취업준비생이나 퇴직 이후를 대비해 자격증을 둘러보는 중장년층이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자격증 관련 규제는 전무하다시피 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29일 현재 민간자격은 2만1888개로 집계됐다. 5월26일 2만개를 넘어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4267개가 새로 생겨 지난해(6521개)와 2014년(6253개)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자격은 자격기본법에 따라 누구나 소정의 자료만 준비하면 등록, 시험 운영이 가능하다. ‘반려동물관리사’나 ‘정리정돈지도사’, ‘드라마힐링지도사’ 등 이색 자격증들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민간자격 중 TEPS(영어능력검정)나 수화통역사 등 ‘공인 민간자격’은 100개(0.45%)가 전부다. 민간자격을 주관하는 법인들은 일정한 심사를 거치면 ‘기존 국가자격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의미인 ‘공인’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신청하는 법인은 연간 60여개에 불과하고 이 중에서도 3∼8개만 기준을 최종 통과한다.

그럼에도 평생교육원 등 상당수 업체들은 스스로 만든 비공인 자격증을 ‘관련 산업이 유망하다’거나 ‘취업에 도움이 된다’며 홍보하고 있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이름만 그럴 듯한 ‘유령 자격증’이 많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으며, 막무가내식 자격증 취득은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최근 5년간 1700여개의 민간자격이 ‘연 1만8000원의 세금을 미납해서’ 등의 이유로 폐지되는 등 부실 자격도 적지 않다. ‘심리상담사’라는 민간자격만 200개가 넘는 등 주관업체만 다르고 자격명칭이 유사한 자격증이 수천개에 이른다.

취준생이나 퇴직자들은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성인 300명을 조사한 결과, 자격증 취득 이유로 81%가 ‘취업’이라고 응답했지만, 본인이 취득한 자격증이 민간자격이라고 정확하게 응답한 사람은 21.9%에 그쳤다. 민간자격을 국가전문자격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61.3%에 달했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자격 관련 민원은 올 상반기에만 600여건이다.

정부는 2008년 민간자격등록제를 도입하고, 2013년 민간자격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등록 요건이나 시험 수준, 운영에 관한 규제는 여전히 전무한 상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등록 요건 강화 등 제도적 고민은 있지만, 공식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무사회 이건우 제도개선위원장은 “‘자격증 2만개 시대’ 도래는 극심한 취업난이 부른 폐해”라며 “‘능력 증명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자격기본법의 애초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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