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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벽안의 오빠·탈북민 동생… 분단의 아픔 끌어안다

입력 : 2016-08-29 19:34:24 수정 : 2016-08-29 22: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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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서 온 카멘 남 교수,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 “지금 이 순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행복’입니다.”

불가리아 국립 소피아대 교수로 지리학 및 국가안보학 강의를 맡고 있는 카멘 남(Kamen Nam·59) 교수는 29일 처음 만난 검은 머리의 이복 여동생 ‘남율주(49·가명)’씨와 포옹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탈북녀인 동생도 자신의 탈북 과정과 ‘벽안’의 오빠를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씨는 “처음 사진을 보고 오빠의 생김새가 너무 달라 만날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며 “하지만 탈북 후 한국에 살면서 3년간 주고받은 이메일 속에서 오빠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감정이 나보다 더해 ‘같은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에 어렵게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카멘 남 국립 소피아대학 교수(왼쪽)가 29일 경기도청 브리핑 룸에서 이복 여동생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지구 반대편에 살던 이들 이산가족의 기구한 삶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6·25가 끝난 직후 전쟁 중 다친 군인들을 요양과 교육목적으로 여러 동유럽 공산국가로 보냈고, 남 교수의 아버지 남승범씨도 학업과 치료를 위해 불가리아에 파견됐다.

5년간 불가리아 소피아대학에서 공부하며 부상을 치료하던 승범씨는 다니던 재활센터에서 남 교수 어머니 예카테리나씨를 만나 결혼해 1957년 남 교수를 낳았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행복을 채 느끼기도 전인 1959년 승범씨는 소환명령을 받고 북한으로 향했다. 사실상 강제 이별을 당한 남 교수 어머니는 재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한국말을 배워 주북한 불가리아대사관 비서직 근무를 지원, 남편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당시 남 교수는 북한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불가리아 외가에 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상봉한 부부의 평양 생활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아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박해를 받다가 결국 김책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남편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2년 만에 혼자 불가리아로 돌아왔다.

이후 북한 생활을 하며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코리아’라는 책을 발간했으나 북한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전량 수거, 폐기돼 현재는 불가리아 국립도서관과 본인 소장본 등 단 2권만 남아 있다. 어머니는 북한에 남은 아버지에게 더 큰 피해가 갈까 봐 연락도 끊은 채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남 교수를 키웠다. 아들의 성도 그대로 ‘남’씨를 유지했다.

이후 들은 아버지 소식은 교수로 활동하면서 재혼해 1남 2녀를 두었다는 것. 그 이복형제 가운데 둘째 여동생이 남율주씨다. 이 둘의 역사적 상봉은 남 교수를 남경필 경기지사가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남이 장군의 19대 후손이기도 한 남 교수는 동생과 함께 남이 장군 묘를 참배하고 전쟁의 상흔인 DMZ(비무장지대)를 돌아보는 등 일정을 마치고 다음달 3일 귀국한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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