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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특허 허브’ 국가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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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9 20:55:55 수정 : 2016-08-29 20: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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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소재 제조업체인 중소기업 A사는 창립 18년 만에 ‘2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일본 기업이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해 곤경에 처했다. A사는 일본 기업의 특허가 이미 알려진 선행기술과 동일하다고 봐 특허심판원에 해당 특허를 무효로 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이 청구를 받아주지 않자 불복해 특허법원에 제소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결정적인 선행기술을 찾아낸 A사는 마침내 ‘특허 무효’ 판단을 받고 한숨을 돌렸다. 일본 기업도 특허침해소송을 취하했고, A사는 코넥스시장에 상장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위 사례나 삼성-애플의 글로벌 특허분쟁에서 보듯 특허소송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특허 리스크’ 관리가 기업 가치평가의 주된 고려요소가 될 정도다.

그런데 특허청이 최근 A사와 같이 특허분쟁에 대처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놀랍다. 특허분쟁 장기화 등을 이유로 특허심판원에서 심리된 증거 외에 특허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 제출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우리 특허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은 지난해 기준 5.9개월로 일본(8.7개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를뿐더러 법원단계에서 증거제출을 제한하게 되면 특허분쟁이 더 길어지고 당사자의 비용부담도 커질 수 있다. 심결취소소송 단계에서 새로운 특허무효증거를 발견한 경우 다시 처음부터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특허무효소송에서 증거제출을 제한하더라도 특허침해소송에서는 증거를 제한없이 제출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두 소송의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 특허법원의 같은 재판부에서 하나의 특허에 대한 유·무효를 서로 달리 판단한다면 소송당사자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재판절차가 아닌 행정청의 심판절차다. 기술적 사항에 관해 관련분야 전문가인 심판관의 판단을 받도록 한 심판전치주의는 그 제도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법원 단계에서 증거제출을 제한하면 국민은 특허의 유·무효에 관한 주요 증거에 대해 새로운 심판청구를 거쳐 제소해야 하는 불이익을 받고 법관에게 재판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과거 특허청의 심판과 항고심판 후 곧바로 법률심인 대법원의 재판을 받도록 한 것에 대해 “헌법상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이후 특허법원이 설치돼 사실심 재판을 맡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특허출원건수 기준 세계 5위의 특허대국이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의 특허무효율이 53.2%(2014년 기준)나 되는 점은 곱씹어볼 부분이다. 특허청과 특허심판원이 특허 무효율 감소를 위해 직권 재심사제도와 특허취소신청제도를 도입한 것은 적절하다. 그럼에도 2014년 기준 한국(230건)과 일본(173건), 미국(70건) 특허청 심사관의 평균 심사건수 차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특허심사과정에서 등록이 거절돼야 할 출원발명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부실한 특허가 등록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허청이 심사인력 확충 등을 통해 출원발명의 옥석을 가려내는 데 역량을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특허법원과 함께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특허 허브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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