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특허청이 최근 A사와 같이 특허분쟁에 대처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놀랍다. 특허분쟁 장기화 등을 이유로 특허심판원에서 심리된 증거 외에 특허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 제출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우리 특허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은 지난해 기준 5.9개월로 일본(8.7개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를뿐더러 법원단계에서 증거제출을 제한하게 되면 특허분쟁이 더 길어지고 당사자의 비용부담도 커질 수 있다. 심결취소소송 단계에서 새로운 특허무효증거를 발견한 경우 다시 처음부터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특허무효소송에서 증거제출을 제한하더라도 특허침해소송에서는 증거를 제한없이 제출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두 소송의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 특허법원의 같은 재판부에서 하나의 특허에 대한 유·무효를 서로 달리 판단한다면 소송당사자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우리나라는 특허출원건수 기준 세계 5위의 특허대국이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의 특허무효율이 53.2%(2014년 기준)나 되는 점은 곱씹어볼 부분이다. 특허청과 특허심판원이 특허 무효율 감소를 위해 직권 재심사제도와 특허취소신청제도를 도입한 것은 적절하다. 그럼에도 2014년 기준 한국(230건)과 일본(173건), 미국(70건) 특허청 심사관의 평균 심사건수 차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특허심사과정에서 등록이 거절돼야 할 출원발명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부실한 특허가 등록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허청이 심사인력 확충 등을 통해 출원발명의 옥석을 가려내는 데 역량을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특허법원과 함께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특허 허브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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