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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서민들 웃고 울린 ‘막둥이’ 하늘무대로

입력 : 2016-08-28 21:50:38 수정 : 2016-08-29 01: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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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계 큰별’ 구봉서씨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남녀노소가 따라한 희대의 유행어 원조이자 안방극장에서 국민을 웃기고 울렸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2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구봉서씨는 이미 고인이 된 ‘후라이보이’ 곽규석, ‘비실이’ 배삼룡, ‘살살이’ 서영춘 등과 함께 1960∼80년대 TV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서울 대동상고를 졸업한 뒤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가수 김정구 형제가 이끄는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놓인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 영정.
연합뉴스
1940∼60년대 연극, 만담, 코미디, 노래가 어우러지는 악극 전성기 시절 김희갑, 서영춘, 배삼룡 등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에도 진출했다.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수학여행’,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가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오부자’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 영화에서 막둥이로 나온 구봉서씨는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1970년대엔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비실이’ 배삼룡과 명콤비로 연기를 선보였고 ‘국민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의 콩트에서 아들이 오래 살라는 의미로 붙여준 글자 수 72자의 긴 이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아직도 많은 코미디언이 사용하는 유행어다. 또 라면 TV광고에서 그가 말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과 같은 눈물이 있는 코미디를 좋아했다는 구봉서씨는 코미디가 사람을 단순히 웃기는 것이 아니고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를 맞더라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았다.


‘비실이’ 배삼룡과 함께 1970년대 TV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콤비로 뭉쳐 전 국민에게 웃음을 줬던 ‘막둥이’ 구봉서(왼쪽)와 ‘비실이’ 배삼룡.
세계일보 자료사진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는 송해, 유재석, 강호동 등 동료, 후배 코미디언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코미디언협회 회장인 엄용수는 “항상 저희를 만나면 ‘네가 출연한 무슨 프로를 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모니터링을 해주셨다”며 “끝까지 가르침을 준 코미디계 위대한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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