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제도는 누진제 방식으로 각 가정에 요금을 부과한다. 불합리하게 세분화된 누진구간과 너무 높은 누진율이 화근이다. 구간이 6단계로 나뉘어 한 달 501㎾h 이상을 쓰는 6단계 가정은 1단계의 11.7배에 달하는 징벌적 요금을 내야 한다. 세계 대다수 단일요금 국가에선 상상도 못 할 과중한 부담이다. 주택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곳은 미국 일부 주와 일본, 대만이 고작이다. 이들 지역에서도 누진율은 1.1배(미국), 1.4배(일본), 2.4배(대만)에 그친다. 우리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징벌적·수탈적 제도다.
각 가정의 전기 소비 패턴이 누진제가 처음 도입된 197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달라졌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국민 소득 수준이 현격히 높아진 데다 에어컨 보급률이 80%를 넘어설 정도로 전기 제품 사용도 일반화돼 이번 여름처럼 한증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누진제 폭탄이 터지게 돼 있다. 폭탄 파괴력은 각 가정의 재력, 소득 수준보다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신빙성 있는 분석 결과도 많다.
현실이 이렇다면 갈 길은 뻔하다. 민생을 책임지는 정부 여당이 합리적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당정 TF 2차 회의에서 불거진 선택 요금제가 그런 대안인지 여간 의문스럽지 않다. 불합리한 누진제를 철폐하거나 누진구간·누진배율을 대폭 축소하는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왜 굳이 먼 길을 찾는지 알 길이 없다. 실체도 알 길 없는 선택 요금제를 거론하는 것보다 누진제 철폐·축소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닌가.
누진제 완화 문제가 처음 공론화됐던 1999년 8월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매번 가깝고 쉬운 길을 놔두고 멀고 험한 길을 찾다가 전기료 개편을 물거품에 그치게 했다. 이번에도 꼼수와 궤변으로 구렁이 담 넘듯이 하려 하다가는 국민의 철퇴를 맞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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