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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8>1945년 8월15일:해방인가 광복인가

입력 : 2016-08-12 19:29:15 수정 : 2016-08-12 19: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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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서 벗어난 그날, 우리는 진정 빛을 되찾았나 71년 전 1945년 8·15를 남·북한은 달리 부른다. 남한의 공식 호칭은 ‘광복절’이고 북한의 그것은 ‘조국해방기념일’이다. 8·15를 남한에서는 광복, 북한에서는 해방으로 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1945년 당시에는 모두 해방이라고 불러, 1946년과 1947년 8·15에 좌우 모두 ‘해방1주년’, ‘해방2주년’이라고 기념했다.

8·15를 달리 부르는 것이 남·북한의 부질없고 소모적인 또 다른 이념 논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이나 담긴 의미를 짚어보면 8·15에 대한 평가가 미묘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차분히 음미하면 70여 년 전의 그날이 가지는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에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모습. 8·15의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해방’과 ‘광복’이 달리 쓰인다. 주권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948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불러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광복인가, 해방인가


우리가 8·15를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이다. 이해 10월 1일 제정된 법률 제53호 ‘국경일에관한법률’ 2조에 ‘광복절 8월 15일’이라고 명기해 국경일의 하나로 정했다. 그런데 이 법안의 ‘신규제정 이유’에는 ‘獨立記念日’(독립기념일)로 되어 있어 이날이 1945년인지 아니면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1949년 9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초안에는 8·15가 ‘독립기념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제5회 임시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광복절로 명칭을 바꾸었다. 법률안은 본회의에 108명 중 81명이 찬성해 확정되었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는 헌법기념일, 독립기념일을 제헌절과 광복절로 고치자고 주장해 관철시켰으며, 본회의에서 의원들은 해방이냐 광복이냐의 의미를 논하기보다는 일(日), 절(節), 날과 같은 어미, 자구에 집착했다. 3·1절, 개천절과 같이 ‘절’ 자를 집어넣어 통일시키면서 제헌절, 광복절이라는 간결한 명칭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당시 속기록을 검토했던 김효선 선생은 당시 제헌의원들이 1945년의 해방이 아니라 1948년의 8·15를 광복절로 간주했었다고 주장했다. 

광복절이 공식명칭이지만 70주년을 맞아 발행한 주화에는 광복을 의미하는 ‘restoration’이 아니라 해방을 의미하는 ‘liberation’이라 표기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홈페이지에서 광복절을 ‘Liberation Day’라고 번역하고 있다. 광복에 해당하는 정부의 공식 번역은 직역을 한 ‘restoration’이 아니라 해방을 의미하는 ‘liberation’인 것이다. 2015년 광복70년을 기념해 한국조폐공사가 발행한 기념주화 뒷면과 금메달 뒷면에도 ‘liberation’으로 번역되어 있다. 포털 네이버의 영어사전도 2005년에는 ‘Independence Day of Korea’라고 번역했으나 2015년에는 ‘National Liberation Day’로 바꾸어 놓았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며 1948년 8월 15일의 정부수립기념일은 독립기념일이다.

◆‘광복절’은 복고적, 보수적 명칭이다(?)

광복이라는 표현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해방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광복은 국권상실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하여 복고적이며 자강 운동적, 계몽 운동적 지향이 보인다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광복이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해방을 선호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두 용어 사이에 이데올로기적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두 용어를 혼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들면 차이가 있다. 해방은 ‘식민 상태 등 압제로부터 풀린다’는 뜻이다. ‘연합국이 한국을 일제로부터 해방했다’거나 ‘한국은 1945년 해방되었다’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은 연합국이 주체가 된 표현이다. 또한 ‘노예(상태)를 해방한다’는 썩 유쾌하지 않은 연상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 입장에서 해방은 다소 수동적·피동적인 표현이다.

1948년 같은 날 정부수립 경축행사의 모습.
광복은 주체적인 표현이다. 광복의 본뜻은 ‘빛나게 회복하다’ 혹은 ‘힘이 줄어들거나 기울어진 것을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것은 ‘빼앗긴(잃었던) 주권(국권, 빛)을 도로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주역’에서 ‘復’(복)은 ‘원래 자리로 오는 것’을 의미하는데 원상태로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광복은 ‘빛나는 되돌림’ 혹은 ‘빛을 되돌리는 상태(주권 회복)’를 뜻한다. ‘光’(광)이 부사적 의미로 사용되어 ‘빛나게 회복한다’ 혹은 光이 동사 復의 목적어로 사용되어 ‘빛을 회복한다’를 모두 의미할 수 있는데, 빛은 주권 혹은 국권을 뜻한다. 따라서 광복은 ‘주권회복’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광복은 일제가 우리를 병탄하기 이전의 빛나는(광명한) 혹은 밝은 역사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과거 지향적이며 복고적, 보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준하는 1956년 ‘사상계’에 “1945년은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광복의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한상진 교수는 지난 3월 2일 열린 인권강좌에서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정체성: 광복과 건국의 관계’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광복을 ‘주권을 되찾는다’는 뜻을 넘어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발원한 이상의 실현’을 포함하는 의미로 보면서 건국을 포용하는 뜻으로 정립해야 한다”며 “진정한 광복은 미완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권회복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한 것으로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어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국민들의 인식을 유념한 평가가 아닌가 한다.

◆“주권회복은 1945년이 아닌 1948년”

‘광복’을 ‘주권 회복’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입각하면 해방보다는 ‘독립’이라는 용어와 그 의미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경일에관한법률’ 제정 이유에도 광복절이 독립기념일로 나오므로 광복을 독립과 등치시킬 근거가 있다.

이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에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을 뿐 독립을 성취한 것은 아니므로 1945년 광복은 해방이라고 해야 한다. 주권을 찾는다는 견지에서 보면 1945년에는 주권이 미국과 소련에 있었고, 1948년에야 찾았으므로 광복은 19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이다. ‘광복은 1945년 8·15’라는 다수설에 맞서는 소수설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성향의 김효선 선생은 광복의 사전적 정의가 ‘주권회복’이므로 1948년 8·15가 광복절이라고 주장했다. 광복절의 정확한 의미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 아니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국권을 회복한 날’이라는 것이다. 1945년 8·15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일 뿐 통치권은 미군정으로 넘어갔으므로 ‘광복의 날’이 아니며 ‘독립의 날’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1945년 8·15에 우리 민족이 주권을 회복했다거나 독립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진보 성향 서중석 교수도 1948년 8·15를 광복절로 호칭하는 소수설을 견지했다. 그는 1945년 8·15를 해방으로 규정했으며 “1945년 8·15로 역사상 처음으로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기본권을 누릴 수 있게 되고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기 때문에 대단히 뜻 깊지만 광복절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선포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아주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2008년에 뜨거웠던 건국절 제정 논쟁을 의식해 1948년 8·15가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의 일환이었다. 그는 1948년이 광복이지 건국은 아니라고 본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진정한 광복은 통일


일반적으로 1945년 8·15를 광복절로, 1948년 8·15를 정부수립기념일로 간주한다. 1945년 8·15를 광복절이라고 국가에서 공인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마당에서 일반적인 인식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1945년 8·15 직후 미·소 양군의 지배로 우리 민족이 독립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완전한 해방·완전한 광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불완전한 해방·불완전한 광복’(부분적 광복; 부분의 광복)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수식어를 첨가하면 광복절 지칭의 대립과 논쟁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1945년 8·15를 ‘부분의 광복절’ 혹은 ‘1기 광복절’로, 미군정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1948년 8·15를 ‘2기 광복절’, ‘미완의 광복절’로, 장차 도래할 통일의 날을 ‘완성된 광복절,’ ‘진정한 광복절’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광복·해방·독립논쟁을 통해 돌아오는 광복절의 의미를 더욱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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