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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히로시마 이벤트’ 우린 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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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30 21:59:48 수정 : 2016-06-15 16: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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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원폭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했다. 반대 여론도 있었다. 미국에서 ‘사죄 외교’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과적으로 사과나 사죄는 없었다. 일본은 미국 현직 대통령이 원폭 투하 71년 만에 히로시마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위무된 듯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양국 간 화해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론은 26∼27일 일본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더 주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G7 정상회의 내내 히로시마를 찾을 오바마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직후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은 크게 올랐으니 일본 입장에선 최고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정재영 국제부 차장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2차대전도 이로써 끝났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본 식민지는 해방됐다. 물론 원폭에 의한 종전은 큰 희생을 낳았다. 그렇다고 종전의 정당성을 포기할 순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입장에선 어린 나이에 온갖 몹쓸짓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도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떻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지난해 12월 말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안이 마련된 것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차관도 CNN 기고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치적 용기로 인해 오바마는 히로시마 방문 결정을 내리기 쉬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안부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심했던 미국의 행보에 자유를 준 셈이다.

앞으로의 위안부 문제가 걱정이다. 사과하지도 않았지만 사과로 받아들이는 일본처럼 위안부 문제도 완전히 합의된 것으로 굳어질까봐 우려된다. 미국도 이젠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만 고려하지는 않을 듯싶다.

이런 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정치권에 파장을 부른 건 당연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그 무렵 아프리카 순방을 떠난 일로 비판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는 게 골자다. 청와대는 “일본으로부터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아마도 실무진 논의에서 배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G7 정상들은 회의 첫날 일본 보수세력의 성지 ‘이세신궁’을 찾았다. 박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더라도 정상들의 이세신궁 방문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빈국이 마련한 행사에 옵서버가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만 일본이 미국을 설득해서 현직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고 있는 동안 우리 정부는 뭘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희생자위령비에 헌화한 뒤 지척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도 찾아줄 것을 요청이라도 해봤는지 궁금하다. 그랬다면 미국은 왜 거부했는가. 이런 의문이 해소돼야 박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불참 결정에 온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정재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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