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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논란 커지는 대만·중국 ‘92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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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9 22:07:17 수정 : 2016-05-29 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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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정부 탈중국 행보
‘92년 합의’는 언급도 안 해
파국 막는 장치 아닌 미봉책 불과
중국은 못마땅… 공세 거세져
모호한 규정… 동거합의일 뿐
지난 20일 민진당 소속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유는 차이 총통이 ‘92공식’(九二共識·중국과 대만이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언급하지 않고 탈중국 행보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대만의 독립 희구 여론도 날로 고조되는 상황이다. 대만 새 정부의 독립 행보는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대만 학생단체가 차이 총통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일도 있었다. 차이 총통이 대만 대표로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린친옌(林奏延) 위생복리부장을 치하한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었다. 린 부장은 지난 25일 세계보건총회 연설에서 ‘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중화 타이베이’는 중국이 원하는 명칭이다. 대만은 그동안 대외적으로는 ‘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 학생 단체는 이 명칭이 대만의 정체성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차이 총통에게는 대만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대만을 23번째 성(省)으로 간주하는 중국으로서는 대만의 독립 추구 행위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대만에선 국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독립파인 민진당이 정권 창출에 성공하면서 독립세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중국과 대만(양안) 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마련된 92공식은 오히려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92공식은 중국과 대만이 1992년 각각 반관반민 성격의 중국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해협교류기금회를 내세워 합의한 것이다. 말이 합의이지 미봉이었다. ‘하나의 중국’을 각자 알아서 표현한다는 ‘일개중국 각자표술(一個中國,各自表述)’ 문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나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중화민국(대만)이 될 수도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더욱이 공식 문서도 아니었다. 민진당은 대만 국민당 정권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이뤄진 약속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민진당은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등 대륙과의 관계성 자체도 부정한다.

과거 한족 국가인 명나라는 대만을 행정권 관할지로 여기지도 않았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지배를 벗어나 17세기 말 청나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만은 중국 대륙에 편입됐다. 그러나 지배는 느슨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뒤에는 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 따라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연합국 승전국인 중국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을 접수하고 대륙의 통치를 속속 이식하기 시작했다. 국민당의 전횡 속에 원주민인 본성인(本省人)과 대륙에서 이주해온 외성인(外省人) 사이의 갈등도 커졌다.

그 정점은 1947년 발생한 2·28사건이었다. 담배 노점상과 탈세품 적발에 나선 전매국 직원의 다툼 와중에 시민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반국민당 시위가 대만 전역으로 확산됐다. 계엄령을 선포한 국민당군이 시위대를 무력진압하면서 약 2만명이 희생됐다. 이 사건으로 인한 대만인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독립파인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승리한 배경이자 중국 공산당의 ‘하나의 중국’ 요구가 대만의 정체성을 각성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 27일 대만민의기금회가 발표한 정체성 여론 조사에서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밝힌 응답자가 80%를 넘어섰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반면 ‘중국인’이라 답한 비율은 8.1%에 불과했다. 중국은 대만을 통일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정작 대만인들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치체제가 다른 사회주의 중국과는 더욱 그렇다.

‘92공식’은 서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진 후 한 번 살아보자는 동거를 약속한 것일 뿐이다. 중국이 대만 신정부에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동거 합의를 결혼증명서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젠가는 남북통일의 숙원을 이뤄내야 할 우리에게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양안 갈등은 남의 일이 아니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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