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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성장’에 가려진 잔혹한 현실

입력 : 2016-05-27 20:22:08 수정 : 2016-05-27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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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서 밀린 빈곤층… 백수 청년들…
개도국 난민들은 계속 늘어만 가고
미국 등 선진국 감옥의 수감자 폭증
스페인에선 매달 수천 건 주택 압류
자본에 의해 ‘기획된 축출’ 실상 지적
사스키아 사센 지음/박슬라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축출 자본주의/사스키아 사센 지음/박슬라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지난 20여년간 세계 경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2.0, 21세기 새로운 자본주의’ 등 멋진 수사들로 포장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말의 성찬일 뿐이다. 이른바 글로벌 경제가 초래하는 잔혹한 현실을 덮어둔 수식어들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잔혹사라 할 만하다. 중산층에서 밀려난 빈곤층과 빈곤층에서 밀려난 극빈층, 눈에 띄게 늘어난 개도국의 난민과 선진국 감옥의 수감자들, 실업난에 허덕이는 신체 건강한 전 세계의 청년들… 이것을 ‘21세기 새로운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201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월가의 부도덕성을 지탄했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가 ‘99%에게 기회를 달라’고 쓴 피켓을 들고 연방준비은행 앞을 지나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1세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현실을 지적한다. ‘축출’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면서 21세기 세계 경제의 민낯을 들춰낸다. 그리스의 사례는 가장 극명하다. 2010년 재정 파탄으로 유럽국 중 구제금융을 받은 첫 케이스인 그리스는 2013년 들어 경기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리스 경제의 회복세를 홍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정부 공식 통계에서 제외됐다. 금융기관은 이들을 지워낸 자료를 내고 언론은 이를 홍보하는데 바빴다. 이 결과 2013년 1월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발표했고, 무디스는 그리스 정부의 신용 등급을 높였다. 그러나 그런 회복세가 그리스 노동 인구의 3분의 1을 통계에서 퇴출시킨 결과라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일자리에서 쫓겨났고, 가장 기초적인 공공서비스에서마저 퇴출당했다. 이는 빈곤층을 굶주리게 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교회에 버려지도록 했으며, 자살률을 증가시켰다. 자본에 의해 ‘기획된’ 축출의 실상이 이것이다.

교도소 수감 인구의 급증은 축출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대규모 수감은 더 이상 파시즘 국가나 독재정권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 아니다. 언필칭 자유민주주의라는 선진국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수감 인구는 600%나 늘어 230만명에 달했다. 가석방이나 보호관찰까지 합하면 700만명을 훌쩍 넘긴다.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까지 합치면 6500만명. 미국인 4명 중 1명꼴로 이른바 ‘딱지’가 붙어 있다. 교도소의 몸집 불리기는 현대판 노예화로 연결된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에 동조하는 한 시민이 ‘1%를 처벌하라’는 문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연방교도소공사’는 모든 수형자들을 육체노동에 내몰았다. 합법적으로 죄수들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이다. 스타벅스, 월마트,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교도소들의 중요 고객이다. 교도소 책임자들은 경찰서 등에 뒷돈을 건네주며 수감 인원을 늘린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수감 인구의 폭증은 선진 각국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 민영 교도소 또한 영국, 독일,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호주 등 모든 대륙에서 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축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주택 압류의 급증이다. 스페인은 주택 보급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역설적으로 압류 건수도 가장 많다. 스페인에서 ‘내 집 마련’은 사실상 건설사와 금융사가 주도한 대출 상품 판매의 다른 이름이다. 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 매달 수천 건의 주택이 압류되었고, 2009년 한 해 9만여 채의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이는 곧 가구의 파괴로 연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도만 다를 뿐 그리스, 헝가리, 포르투갈 등 지중해와 동유럽뿐 아니라, 복지 강국이라는 핀란드와 덴마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한국사회 또한 이런 축출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오히려 그 반대다. 자살률은 최고이고, 삶의 수준은 최악이다. 청년 실업 또한 악화 일로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체제의 변두리는 이미 그 중심보다 넓어졌다.

저자는 2000년 한국 학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조짐을 예견한 바 있다. 15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정은 잔인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축출은 국가와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저자는 “극에 달한 약탈적 구조와 축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새로운 분석 도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해 달려왔는가. 저자는 미래를 위해 보다 사려 깊은 사유를 촉구한다. 저자는 미국 정치외교 전문 잡지 포린폴리시가 뽑은 현대 100인 사상가 중의 한 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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