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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에 관여하는 정부 고위관계자는 5일 조선3사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설사 대우조선해양이 문 닫는다고 해서 현대·삼성중공업의 경쟁력이 그냥 생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부실의 정도 등 처한 상황은 차이가 있지만 짓고 있는 배의 인도가 안 되는 어려움은 3사가 똑같다”면서 “누가 하나 없어지면 나아질 거다, 이런 식으로는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을 없애서 현대, 삼성과 합치는 건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으로 미뤄 정부 관련 논의의 방향은 합병이 아니라 3사 모두 살리는 쪽이다. 이 관계자는 “셋 모두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호황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 4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간담회에서 “합병이나 퇴출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지만 3개 기업이 제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살아날 방법을 갖추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합병은 없다”(4월26일 임 위원장)는 입장에서 한발 더 나가 실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합병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정부 주도의 합병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 등을 의식한 때문이지 합병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 자율의 합병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고, 임 위원장도 지난달 26일 기업 구조조정 정부 협의체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할 경우 정부는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회사까지 망라하는 연결재무제표상 작년 말 4266%로 유난히 높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도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물론 아름다운 수치는 아니지만 저런 회사가 왜 문 안 닫고 있나 생각할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예정대로 모두 유동성 지원을 마치면 현대나 삼성 수준으로 확 떨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KDB산업은행은 작년 10월 마련된 지원방안(유동성 지원 4조2000억원, 자본확충 2조원, 선수금환급보증 50억달러)을 이행 중이다. 나머지 2사의 부채비율은 현대중공업 221%, 삼성중공업 306%다.
합병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합병 불가피론이 여전하다. 과거 대우조선 감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회계법인 임원 C씨는 “3사 모두 구조조정해 숨통을 트여놓고 호황을 기다리겠다는 모양인데 문제는 과거와 같은 호황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급성장한 중국업체와 수주 경쟁을 하려면 숫자를 줄이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정부가 선을 그어도 합병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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