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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성철 스님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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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0 21:24:10 수정 : 2016-04-20 21: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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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행동은 추상같았다. 제자들에게 당장 도끼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윽고 도끼를 대령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계를 내려쳤다. 시계는 바위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고 그 비싼 시계를!” 제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스님이 부순 시계는 값비싼 롤렉스 시계였다. 평소 스님을 따르던 신도가 시계가 없어 수행에 불편할 것이라며 선물한 것이었다. 스님은 신도의 성의를 생각해 마지못해 받았다. 그러고는 신도가 암자를 나가자 손목에 찬 시계를 풀었다. “원래 참선이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야 하거늘, 수행하는 중놈이 시간을 볼 때가 어디 있노.” 스님의 불호령에 시계는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성철 스님은 항상 누더기 무명옷을 걸치고 살았다. 중생들의 보시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보기에 안쓰러웠던 제자들이 무거운 무명옷 대신에 비단옷을 해드렸다. 이불도 가벼운 비단 이불로 바꿨다. 스님은 말없이 제자들이 하자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 뒤 두 달쯤 지나 비단옷과 이불을 가위로 잘라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무명옷을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성철 스님은 평생 청빈한 삶을 실천한 수행자였다. 불교에서 가장 높은 종정의 지위까지 올랐지만 그의 재산은 무일푼이었다. 열반 당시에 남긴 유품이라곤 40여년간 직접 기워 입은 누더기 장삼과 덧버선, 그리고 검정 고무신이 전부였다. 그의 사후에 이들 유품은 문화재청의 ‘의(衣)생활 유물 목록’에 선정됐다. 볼품없는 한낱 누더기가 비단보다 귀한 보물이 된 것이다.

성철 스님이 열반 23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가 ‘현대 한국 인물 시리즈’의 네 번째 우표로 6월에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성철 스님 우표를 발행한다. 인물 시리즈는 매년 한국의 주요 인물을 선정해 이를 모델로 발행하는 기념우표다. 지난해에는 이병철·정주영 두 경제 거목의 우표가 만들어졌다.

성철 스님 우표에는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는 친필 글씨도 함께 실린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스님이 값비싼 롤렉스 시계를 부수고 비단옷을 자른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니었을까. 비단으로 포장된 거짓된 자신을 벗고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수행자의 몸부림이었다. 정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외양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스님의 어록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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