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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한 아버지·전사한 형… 분단의 상처 생생히

입력 : 2016-02-18 19:42:37 수정 : 2016-02-18 1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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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집 ‘비단길’ 펴낸 김원일 소설가 김원일(74)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8번째 소설집 ‘비단길’(문학과지성사)을 상재했다.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상처를 주로 천착한 단편 7편을 수록했다. 1966년 단편 ‘1961·알제리’로 데뷔한 이래 일관되게 다루어온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들이다. 이번 소설집에 담은 내용들은 그가 이전에 장편들을 통해 깊이 다룬 배경이나 인물들을 다시 변주하는 양상이다.

김원일의 부친 김종표씨는 일제말 좌익운동을 시작, 해방공간에서 남로당의 수뇌부로 활동한 인물이다. 전쟁 중 서울의 인민군 치하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부친은 홀로 월북하고 그의 가족들은 고향 경남 김해군 진영으로 내려온다. 이때부터 그의 모진 고생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지서에 끌려가 얼마나 맞았던지 새벽에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가족들을 챙기지 못한 채 단신 월북해버린 남편을 60년 만에 이산가족상봉장에서 만나는 설정이 표제작 ‘비단길’이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말한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8번째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김원일. 그는 이번 소설집에 자신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단편들을 수록했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단했어도 내사 그이를 언젠가는 꼭 만낼 끼라는 일편단심이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세월이 60년이라니, 마치 여름 한나절 꿈을 꾸다 소내기 소리에 깨어난 듯하구나.”

정작 부부가 상봉한 자리에서는 데면데면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두 팔을 내두르며 갑자기 미친 듯 울부짖었다.

“여보,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 여생을 당신과 함께, 조석으로 따뜻한 밥 대접하며 보내고 싶심더.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

자신의 가족사를 소재로 쓴 건 맞지만 이 소설의 어머니처럼 김원일의 작고한 모친은 아버지를 표나게 그리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가족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원망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하니 소설은 아들의 심정이 투사된 어머니의 깊은 속마음으로 읽힌다. 소설집 말미에 수록한 ‘아버지의 나라’는 소설가가 된 아들이 북한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적십자사 총재와 함께 참석해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는 내용이다. 이미 별세했다는 소식은 남한에서 들었지만 구체적인 기일을 알기 위해 방북 기간 내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아버지가 추구한 이상적인 혁명의 나라의 실상을 피부로 접하는 아들의 심정은 허탈하기만 하다.

첫머리에 배치한 ‘형과 함께 간 길’은 역시 6·25를 배경으로 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다루긴 마찬가지이지만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경험이 아닌, 말미에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체험을 빌린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강원도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있던 형이 짧은 휴가를 나와 함께 보낸 이야기다. 형은 복귀한 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김병익은 “내 중학 시절 전방의 보병 장교로 참전 중이던 큰형이 처음 나온 휴가의 짧은 참에 멀리 고향에 아우 둘을 데리고 내려가 달은 환하게 비추이고 눈 덮인 들판은 참으로 아름답던 길을 걸으며 조부모님을 뵙고 일선으로 귀대한 지 두 달도 못 되어 전사한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도 알 수 없던 운명에의 예감’을 운운했는데 나의 회고가 형상화되었다”고 밝혔다.

‘난민’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서울에 진격할 당시 인민군 치하에 남아 있던 서울 시민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미 장편 ‘불의 제전’을 통해 세세하게 보여준 바 있지만 이 단편은 김원일의 생체험을 바탕으로 ‘칠곡댁’과 그 자녀들의 고난을 보다 선명하게 그려낸다. ‘기다린 세월’에서는 북으로 간 외동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억척같이 자식들을 돌보지만 시어머니와는 화해하지 못한 어머니의 고부갈등을 쓸쓸하게 펼쳐놓는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아들을 기다리며 딸집과 며느리집을 오가던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은 “모진 목숨 인자 다하는 모양인데, 너 애비는 에미 찾아 여태 돌아올 줄 모르는구나”였다.

이즈음 한 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김원일은 “소설은 체험에 상상력을 보태어 쓴다지만, 근래에 와서는 상상력 대신 내가 겪었던 지난날을 떠올리기가 수월해졌다”면서 “어느덧 병고에 시달리는 칠십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앞으로 몇 편의 글을 더 보태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여기에 이르기까지가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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