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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덫에 빠진 ‘미국의 민낯’ 파헤치다

입력 : 2016-01-08 19:06:40 수정 : 2016-01-08 2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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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공정·정의 점점 사라지고
부의 양극화로 박탈감에 시달려
금융위기는 도덕적 타락의 방증
작은 구멍 나 붕괴 위기 댐 처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 길”
조지 패커 지음/박병화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미국, 파티는 끝났다-고삐 풀린 불평등으로 쇠락해가는 미국의 이면사/조지 패커 지음/박병화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세계 초강대국이지만 사실상 2류 국가로 전락한 미국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미국의 중견 저널리스트 조지 패커는 신간 ‘미국, 파티는 끝났다’에서 미국의 실제 모습을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미국병에 로마의 말기적 현상을 오버랩하기도 한다.

저자는 도덕적 해이와 건실한 중산층의 붕괴에 주목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미국병’의 단면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압류한 집을 채권기관이 매물로 내놓은 사진이다.
글항아리 제공
가치 기준의 붕괴로 인한 사회 해체 현상도 두드러진다. 이런 징후는 오래전부터 보였다. 신교도 정신이 와해되면서 마치 댐에 난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 댐 전체가 무너질 상황에 처한 게 지금 미국의 상황이라면 과장인가.

저자는 지난 30∼40년간 사회 각 방면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실상을 전한다.

“인간의 본성이야 변함없지만, 돈의 위력이 왜곡과 과장 효과를 일으키면 그것은 인간의 행동을 천 갈래의 다양한 모습으로 타락시킨다.” 저자는 미국식 자유방임주의 또는 자유지상주의라는 선언적 구호 아래 약탈 자본주의, 마피아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고 개탄한다.

1978년부터 2012년까지 불과 한 세대 만에 미국의 사회 계약체계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은 부의 양극화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생존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우선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저자는 깅리치를 ‘과시욕의 괴물’로, 미국 정치의 광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린다.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은 수전노 DNA를 타고난 사람이다. 가난한 흑인 이민자의 아들에서 국무장관까지 오른 ‘청렴결백의 대명사’, 하지만 워싱턴의 정치공학에서 소외된 콜린 파월은 미국 정신 퇴조의 한 현상이다. 

미국의 한 여성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기찻길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서성이는 모습이다. 몰락한 시민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글항아리 제공
자유연애와 코카인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을 경영하는 앨리스 워터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있으면서 큰 돈을 벌고 사라진 로버트 루빈, 그는 약탈자본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된다.

빈곤지구에 사는 흑인소년에서 마약업자이자 랩의 황제가 된 제이지(Jay-Z)는 또 어떤가.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극단적 속물로 그려진다. 한편으로 저자는 유력 언론 매체의 기사 조작을 감시하면서 인터넷으로 특종 기사를 퍼트린 시민기자 앤드루 브라이트바트, 탐욕스러운 월가 금융계 임원들의 부패를 고발한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도 소개한다. 판사 출신의 워런은 미 대선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관용, 공정, 정의 같은 미사여구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다수 미국인은 불평등의 덫에 빠져 아메리칸 드림을 좇을 수 없다고 체념한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은 저널리즘을 문학으로 승화한 첫 시도로, 하드보일드 소설 같다는 평을 듣는다. 20세기 초에 황금만능주의와 도덕성 결여에 불만을 품고 나타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교될 수 있는 책이다.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해진 토마 피케티, ‘위대한 탈출’을 쓴 앵거스 디턴, 불평등 사회를 지적한 전 세계은행 총재 조지프 스티글리츠,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등도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저명 인사들이다.

저자는 굳이 대책이 있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기본이란 청교도적 전통을 되살리는 길이다. 하지만 금융자본가들이 꽉 틀어진 미국은 그럴 희망마저 사라져가는 것 같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울적하고 심란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최근의 미국 역사를 서사시적으로 다뤘다”면서 “사회제도에 의해 실패하고 거대한 금융자본의 폭력에 내팽겨진 고립된 영혼들의 고독감이 당신의 피부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 것”이라고 서평을 전했다. 지난해까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면서 화제에 몰고온 책이다.

2013년 전미도서상(논픽션부문)을 받은 이 책은 미국식 은수저 계급론, 실업과 범죄의 확산, 사회연대감의 실종 등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미국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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