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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에… 엇나간 아이들이 되돌아왔다

입력 : 2015-12-08 19:02:04 수정 : 2015-12-09 19: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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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 품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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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3학년인 유지영(14·가명)양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올 여름방학 때부터였다. 어머니와 다툰 것을 계기로 이따금 외박을 하더니 새 학기가 시작된 다음에는 아예 가출을 하고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가출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실종자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을 통해 지영양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영양이 중고생 8명으로 구성된 ‘가출팸’(가출 패밀리의 준말)의 일원으로 PC방과 찜질방, 공원 등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2주간의 탐문수사와 추적을 거쳐 가출팸 8명을 모두 찾아내 해체했다. 경찰은 지영양을 포함한 중학생 3명은 인천지방법원 소년부로 송치하고 나머지 고등학생은 지역 학교전담경찰관을 연계해 상담과 범죄예방교육을 받도록 조치했다. 지영양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3주간 합숙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심리상담 치료와 비행 행위에 대한 심층 면담을 받은 뒤 법원의 보호처분을 받고 이달 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영양의 어머니는 “법원에 들어가기 전에 인천 서부경찰서의 경찰관이 우리 딸이 좋아하는 돈까스를 사줬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며 “경찰관이 건넨 따뜻한 한 마디를 계기로 지영이가 탈선을 멈출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 대전 중부경찰서 소속 학교전담관인 김성중 경위의 보물 1호는 휴대전화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대전 각지의 ‘청소년 친구’ 3200여명의 전화번호가 담겨 있다. 김 경위의 하루 일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들의 일상을 확인하고, 모바일 메신저로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3년 전에는 아예 휴대전화 뒷자리를 청소년 상담전화인 1388번으로 바꿨다.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부모나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가출 소식을 접하면, 김 경위는 친구들에게 ‘SOS’를 요청한다. 가출 청소년이 평소 어떤 친구와 잘 어울렸는지, 어느 장소에 잘 가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확인한 다음 소재 파악에 나선다. 가출 청소년을 찾으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면서 얘기를 들어준다. 몇 차례 같이 식사를 하면 가출 청소년이 마음의 문을 연다. 김 경위 덕분에 대전 중부경찰서는 올해 ‘학교 밖 청소년’ 발굴 실적에서 전국 1위(188명)를 차지했다.

“가출하고 친구들끼리 어울리면서 범죄에 빠지는 게 사실은 ‘나 힘드니까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는 표현이더군요.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변합니다.” 김 경위가 전하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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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찰청에 따르면, 학업을 중단하고 제도권 밖에서 맴도는 ‘학교 밖 청소년’은 37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학령기 인구의 5.4%에 불과하지만, 소년범 중 학교 밖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8배가 넘는 44.1%에 달한다. 올해 5월부터 학교 밖 청소년 지원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은 경찰서별로 전담요원을 지정해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는 여성가족부지만, 이들이 제도권의 도움을 받도록 현장에서 발굴해 관계기관으로 인도하는 역할은 사실상 경찰의 몫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경찰이 발굴한 학교 밖 청소년은 4568명으로 이 중 3725명(81.5%)이 학교로 돌아가거나 청소년지원센터 등 관계기관 지원 서비스를 받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을 발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일선 경찰이 자비로 부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찰청은 올해 정부에 학교 밖 청소년 발굴을 위한 활동여비와 상담비 등의 목적으로 14억원을 요구했으나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은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 만큼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범죄를 사전 차단하는 차원”이라며 “자비를 들여 발굴 작업에 나서는 경찰관의 편의를 위해 내년부터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공동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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