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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 노래하던 캐스커… 산, 대지, 달을 읊조리다

입력 : 2015-12-02 20:38:13 수정 : 2015-12-04 1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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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 이준오·융진 7집 ‘ground part1’
쉼없이 10여년 활동하다 보니

재미없는 일상의 반복에 지쳐

무작정 사람없는 아이슬란드로 떠나

아무것도 안하고 대자연 만나니

저절로 음악인생에 대해 정리돼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누군가와도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음악 할 것


“나를 향한 당신의 미움이/ 조금씩 나를 타고 내려 냇물을 이루고/ 협곡을 따라 흐르다 얼어붙어 떠돌아다닐 때/ 다만 남겨진 슬픈 그대 원망을 내려다 보면서/ 난, 난 가만히 그대로 여기 있었습니다.”

쓸쓸한 가사에 절제된 전자음이 더해져 깊은 외로움이 전해진다. 곡명이 ‘산’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들으면 흰 겨울산과 협곡, 얼음의 이미지로 덮인 웅장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밤과 도시를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이준오, 융진)가 이번엔 산, 빛, 달, 대지 등 자연을 음악에 담았다.

이준오
최근 정규 7집을 발표한 캐스커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차가운 기계음에 섬세한 감성을 담아내 ‘따뜻한 전자음악’, ‘전자시인’ 등 별명으로 불렸던 그들이다. 이번 앨범에는 웅장하고 묵직한 느낌을 더했다. 이준오가 지난해 여행에서 받은 영감 덕이다. 그간 아프리카도 가보고 유럽도 가봤다. 하지만 그에게 음악을 지속할 에너지와 의지를 준 여행은 춥고, 어둡고, 사람도 많지 않은 아이슬란드였다.

“그때 제 마음이 많이 힘든 상황이었던 게 이유인 것 같아요. 너무 지쳤고 일이 재미 없었어요. 지금까지 음악을 해오면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막막한, 그런 때였죠.”

융진
쉬지 않고 10년 가까이 활동했으니 고비가 올 만도 했다. 캐스커는 2003년 데뷔한 뒤 1∼2년 간격으로 꾸준히 정규앨범을 냈다. 이번 앨범은 2012년 이후 3년, 가장 긴 공백기 끝에 나온 앨범이다. 이준오는 그 사이에도 ‘더 테러 라이브’ 등 4편의 영화음악 감독을 했고 2014년 솔로음반도 냈다. 하지만 음악인생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갔다.

“영화음악처럼 다른 일을 해보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결이 되지 않고 더 힘들기만 했어요. 지칠 대로 지쳐 지난해 폭발한 거죠. 서울에서 최대한 멀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아이슬란드로 떠났습니다.”

그는 3주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저절로 머릿속이 정돈됐다.

싱글앨범 '산' 2015.06.18
“사람은 거의 없고 대자연만이 고요하게 자리한 그곳에서 느꼈어요. ‘내가 했던 걱정들은 너무 하찮았구나. 아직도 나는 할 게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구나.’ 그런 깨달음과 함께 계속 음악을 해나갈 에너지를 얻고 왔어요. 다시 정규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돌아온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힘이 샘솟았다. 융진은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뒤에 만든 곡을 딱 받아봤을 때 놀랐다. 도시와 사람을 노래하던 사람이 산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니까. ‘여3행이 특별하긴 했나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변과 팬들의 평가는 ‘신선하다’와 ‘캐스커 같지 않다’로 나뉘었다. 하지만 중견 뮤지션이 된 캐스커가 보다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전환기적 앨범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7집 정규앨범을 낸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는 “누군가와 경쟁하려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정규7집 앨범 ‘ground part 1’ 2015.10.23,
노래를 만드는 이준오와 노래를 하는 융진은 1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준오가 노래를 하기도 하고, 융진이 곡을 쓰기도 한다. 20대 초반 밴드로 음악을 시작한 이준오는 군 제대 후 일렉트로닉 음악 세계에 발을 디뎠다. 2003년 캐스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뒤 융진을 만나 2집 때부터 쭉 함께했다. 융진은 몽환적인 전자음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와 음색을 지녔다. 에픽하이 ‘Lovelovelove’, 심현보 4집 피처링 등을 하기도 했다.

‘캐스커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개척했다.

팬층도 단단하다. “소위 ‘폭망’(폭삭 망함)한 음반이 있었다면 빨리 접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생활을 이어갈 만큼의 피드백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희망고문처럼요.” 희망고문이라는 말에 융진도 “맞는말”이라며 웃었다.

캐스커는 부지런히 활동했고, 팬들은 지속적인 호응을 보냈다. 디지털 음원시장 확대로 기존 활동 가수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건 이 꾸준함 덕이다.

“글쎄요. 누구와 경쟁하지 않으니 흔들릴 일이 없었어요. 꼭 뭔가를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다면 일찍 지쳐 그만 뒀겠지만, 부담 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융진)

지난달 7, 8일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단독콘서트를 가진 캐스커는 내년에도 공연과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정규음반은 아니고 재미있는 걸 한번 해보려고 해요.”(이준오)

이제 막 음악 커리어의 2막을 연 캐스커는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인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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