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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테러에 떨고 있는 인류문명과 허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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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16 21:37:37 수정 : 2015-11-17 0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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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시민테러는 휴머니즘의 막장
패권주의 있는 한 세계평화는 요원
IS(이슬람국가)의 소행으로 보이는 무차별테러가 13일(현지시간)의 금요일 프랑스 파리를 덮쳤다. 그것도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인 동네 카페, 식당, 피자집, 운동장, 공연장 등에서 벌어졌다. 프랑스 검찰은 전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모두 6곳에서 발생한 총기·폭탄테러로 인해 480여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에 대한 테러는 테러분자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규탄은 물론이고, 인류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함께 인간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결함과 허무를 읽게 한다.

알카에다는 미국과 권력의 핵심을 그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알카에다에서 독립한 것으로 알려진 IS는 유럽과 대중을 그 대상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테러의 성격이 날로 비겁해지고 포악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사상과 삶의 자유로움이 허용된, 그리고 가장 이민자에게 너그러운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공격했다. 이는 어떤 점에서는 커다란 전쟁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테러리스트들은 ‘알라신과 시리아’를 외쳤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죽었다. 아마도 그들은 성전의 순교자라도 된 듯 자신의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신을 섬기는 그 끝이 고작 ‘테러’라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범죄 중에 가장 비겁한 범죄가 어린이 유괴이듯이 테러 중에 가장 비겁한 테러가 대중에 대한 테러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그만큼 나약해졌고, 간악해졌고, 생명에 대한 숭고함에서 멀어졌다.

‘테러’라는 단어를 발생시킨 프랑스에서 벌어진 대중테러(일상테러)는 이제 공포를 넘어서 일종의 휴머니즘의 막장을 느끼게 한다. 파리시민들은 “테러에 대항해서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평범한 시민의 분노와 결의를 보였다. 니체는 서구문명의 허무주의를 ‘허무주의를 완성’함으로써 극복했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그의 사후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니체의 조국인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나치즘이 발생했고, 전후 소비에트전체주의가 탄생했다. 동양에서 서양문명을 가장 잘 배운 일본은 군국주의를 탄생시켰다. 도대체 근대과학기술문명의 정체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알다시피 오늘날 중동국가의 지도는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유럽 국가의 정상들에 의해 그어졌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도 이 과정에서 생겼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는 로마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력의 이슬람정복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차례의 십자군전쟁이 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유대교에서 갈라진 종교이다. 기독교는 아브라함-이삭의 계통이고,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스마엘의 계통이다. 유대교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불을 숭배하는 종교는 빛을 숭상하지만 동시에 불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편이다. 이들 두 세력의 갈등과 전쟁을 인류문명사의 관점에서 보면 불의 신앙을 주도한 문명권 내부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구문명사가들이 흔히 중세암흑시대라고 말한 시대는 사라센제국으로 알려진 이슬람세력이 세계를 지배한 시대였다. 근대 서구문명, 특히 과학문명의 기초마저도 마련해 준 중동 이슬람세력들은 근대에 들어 문명의 주도권을 기독교세력인 유럽에게 내어주면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서구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민족주의를 부르짖게 된다. 근대에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부르짖는 세력 혹은 지역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후진지역을 의미한다.

중동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중동지역은 서방국가의 이해가 얽힌 가운데 스스로 분열을 초래해서 걸프전, 이라크전, 그리고 최근의 시리아 내전 등 여러 차례 전쟁터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프칸 전쟁의 여파로 부상한 알카에다세력은 이슬람 저항세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 세력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 등 서방국가에 테러를 자행하는 테러집단으로 변신했으며 IS은 그 악성변종이다.

서방국가가 일제히 이번 파리테러를 규탄하고, 이를 계기로 IS분쇄를 다짐하고 나섰다. 물론 선진-강자의 입장에 있는 서방이 국가체제도 갖추지 못한 IS를 물리적으로 제압할 것임은 분명하고 명분도 있지만, 서방-중동의 대결과 이슬람 테러세력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패권과 물리적 힘에 의한 지배가 계속되는 한 세계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이다. 힘이 부족한 세력들은 게릴라전과 테러로 맞설 것이고, 이에 대한 정규군과 경찰의 완전한 승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인류의 평화보다 전쟁에 기여한 지도 오래되었다. 인간은 선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하는 데에 익숙해진 것 같다. 터키해변에서 발견된 3세 ‘아일란 쿠르디’로 인해 열렸던 이민문호가 테러범의 난민위장침투 사실이 불거지면서 닫혀지는 것도 예상된다. 패권주의와 테러의 인간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반성이 없으면 인류 평화는 요원할 것임에 틀림없다. 자유의 상징인 파리가 테러와 이데올로기적 열광의 피로 물든 것은 인류 평화가 종래의 선악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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