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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새어나온 절규… ‘미래의 비극’을 경고하다

입력 : 2015-10-16 09:06:05 수정 : 2015-10-16 0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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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으로 주목받는 알렉시예비치 작품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우리한테 물어봐.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멋대로 역사를 바꾸지 말고. 지금 물어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는가.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당대 권력집단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인가. 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는 힘 없고 낮은 자리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오랫동안 곳곳을 누비며 수천 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기고 지거나, 권력자들이 분칠하는 역사는 그네에게 관심 밖이었다. 사람들의 육성을 모아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온 그의 작품 두 편이 국내에도 번역돼 노벨문학상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와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가 그것이다.


‘전쟁은…’은 2차대전에 참전한 소비에트 여성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책으로, 이 책에 목소리를 담은 여성들은 죽음보다 죽이는 일이 더 끔찍했다고 회고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여자는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생명을 낳아 기르는 존재이기에 여자에게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썼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자신만의 전쟁이 있었다. 어떤 간호병에게는 수술대가 전쟁터였고, 빨간 스카프를 좋아해 벗지 않다가 그것이 표적이 되어 죽어간 소녀 저격병도 있고, 죽과 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았지만 전투에 나갔던 이들이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해 망연자실하던 취사병의 전쟁도 있었다.

그동안 주로 남자들이 치르는 전쟁, 국가라는 존재가 목숨보다 더 소중한 대상으로 기술된 전쟁에 비해 알렉시예비치의 이 책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의 시각에서 다룬 전쟁이다. 그네는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쓰려고 했다면서 이 책에 수록한 자신의 일기에서 웅변한다.

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젊은 시절 흑백 사진. 그네가 만났던 2차대전 참전 여성 하나는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 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 색…”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회상은 역사도 문학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곳, 따스한 사람의 목소리, 과거가 생생히 반추되는 그 목소리 속에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감춰져 있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비극이 담겨 있다. 삶의 혼돈과 욕망이. 삶의 유일함과 불가해함이. 목소리 속에 이 모든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86년 벨라루스 국경 너머 체르노빌에서 폭발한 원자로로 인해 어떤 비극이 일어났고 인류의 어떤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지, 처참하게 피폭당해 죽거나 불구의 몸으로 살고 있는 이들의 육성을 담아낸 책이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원전이 하나도 없는 벨라루스 485개 마을이 파괴됐고 그중 70개 마을은 매장당했다. 2차대전 때 619개 마을이 쑥대밭이 됐던 것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과거의 전쟁은 명목상 종식되었지만 이를 능가하는 비극이 미래로 확산되는 흐름을 상징하는 재난이다.

원자로 화재 진압에 동원됐다가 모스크바 병실에 감금돼 죽어간 남편 곁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내 지키던 아내. 하필 잠시 남편 동료의 장례식에 다녀온 사이 남편은 아내 이름을 부르다가 죽었다. 그네가 뱃속에 품고 있던 딸도 세상에 나온 뒤 4시간 만에 간경화증과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었다. 갓 낳은 딸은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네는 “내가 딸을 죽였다… 딸이, 나를 살렸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살렸다. 그렇게 작은 아이가…”라고 울었다.

체르노빌과 가까운 마을에 살던 주민은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저녁에 사람들이 다 베란다로 몰려나갔고 베란다가 없는 집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 집에 갔어요. 까만 먼지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얘기했어요. 숨 쉬었어요. 구경했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무지가 불러온 이런 비극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당장 원자력발전소 21기가 존재하는 한국의 미래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고 썼거니와 과거를 다룬 ‘전쟁은…’이 인간 본성의 불가해한 슬픔을 파고들었다면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그 본성이 여전히 작동하는 현재 혹은 미래의 비극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전쟁과 재난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알렉시예비치에게 말했다.

“눈물부터 쏟아져. 하지만 반드시, 꼭 이야기해야 해. 우리가 겪은 일이 헛되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우리의 비명소리가 남아 있어야 하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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